안성 배 선도농가 전예재 농부가 재배한 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보현 기자 
안성 배 선도농가 전예재 농부가 재배한 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보현 기자 

높은 당도와 고품질 배로 유명한 안성에서 33여 년 동안 배 농사에 인생을 건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안성 지역 배 선도농가이자 안성시 배 연구회 회장인 농부 전예재(67) 씨.

안성 지역은 배를 5대 농·특산물 중 하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국내 배 농가는 8천여 가구이며 그중 안성에는 500여 농가가 있다. 농가 수는 전국 3위지만, 배 재배면적으로는 압도적 1위다.

그중 전예재 씨는 지난해 농촌진흥청 ‘2024년 최고품질 농산물 생산단지’ 선정 평가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해 안성 지역의 배 선도농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씨는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배들이 햇볕에 데고 열매가 터지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본인만의 재배 방식으로 좋은 배를 재배할 수 있었다.

또 국내 개발 품종인 ‘신화’ 배를 선도적으로 재배해 한국 배 시장에 국내 품종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올해 전예재 씨가 심은 국내 육성 품종 ‘신화’ 배 나무 유목. 사진=이보현 기자

◇‘신화’ 배 선도주자=전예재 씨는 국내 개발 품종인 ‘신화’ 배를 선도적으로 안성 지역에 심고 높은 품질로 재배하고 있다.

현재 국내 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지난해 기준 85%)을 기록한 ‘신고’ 배는 일본 품종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1995년 ‘화산’과 ‘신고’를 교배해 2012년에 국내품종 ‘신화’ 배를 품종등록을 했다.

‘신화’는 ‘신고’보다 당도가 높고 빨리 익어서 수확 시기가 15일 이상 빠르다. 또 상온에서 30일, 냉장 보관 시 50일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안성 지역은 이미 신고 배 점유율이 높은 까닭에 새로운 배 품종을 심으려는 농가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에 전 씨는 신고 배 나무에 신화 배 나무를 접목해 신화 품종을 육성했다. 접목 방식은 유목부터 키워서 과실을 따는 방식보다 기간이 대폭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다.

그가 육성한 신화 배는 지난해 ‘우리 한국 배 연구회’가 주최하고 국립원예특작과학원과 안성시농업기술센터가 주관하는 ‘우리 배 한마당 큰잔치’ 중 ‘최고품질 우리 배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품질을 입증했다.

안성 배 선도농가 전예재 씨가 한국과수협회에서 주관한 우리배 품평회에서 받은 최우수상 상패를 들고 있다. 사진=이보현 기자
안성 배 선도농가 전예재 씨가 한국과수협회에서 주관한 우리배 품평회에서 받은 최우수상 상패를 들고 있다. 사진=이보현 기자

◇"배는 사람 키우는 것과 같다"=전예제 씨는 배 농사 비법으로 ‘과유불급’을 꼽았다.

그는 "과수는 햇볕이 잘 들게 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나무 자람새를 봐서 비료를 조절해야 하는데 욕심내서 비료를 많이 주면 잎이 커져 그늘이 생긴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배 농가들은 농촌진흥청에서 정해준 비료 적정치를 쓰는 것보다 본인 경험을 토대로 더 많이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는 무게로 가격을 흥정하는데, 비료를 많이 주면 배가 커져 무게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씨는 "잠깐 돈은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자칫하면 농사가 다 망해 적자가 난다"고 지적했다.

비료를 많이 주면 나무가 너무 자라서 그늘이 많이 생겨 일조량이 보장되지 않고, 과육의 세포가 커지면서 세포 사이가 넓어져 그 사이 균이 잘 침투해 병이 잘 발생한다는 것이다.

병에 취약한 배가 되면 약을 쳐야 하고, 그에 따른 약값, 인건비 등 경영비 또한 배로 든다.

그는 "과욕은 금물이다. 비료를 예전에 많이 줬다가 한 번 농사가 크게 실패했다"며 "그때 과유불급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어 "몸이 뚱뚱한 사람은 질병에 쉽게 걸리듯 배도 비료를 많이 주면 병에 취약하다. 욕심을 내다 손해를 보는 것"이라며 "비료가 적으면 비료를 더 주면 되지만 많이 들어가면 손으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 씨는 10년 간 땅에 비료를 주지 않았고, 현재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주며 농촌진흥청에서 정해준 기준치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당시 비료를 끊었을 때 주변에서는 비료를 넣어야 된다고들 했다. 근데 비료를 딱 끊어버리니 해마다 나무가 살아나는 게 눈에 보였다"며 "이제는 화학비료를 끊고 거름을 과다하게 안 넣은 지 10년이 지났다"고 전했다.

안성 배 선도농가 전예재 씨와 그의 아내가 본인들이 출하한 배 상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보현 기자

또한 "사람이라는 게 알면서도 실천하기 쉽지 않다. 옆에 사람들이 다 하고 나만 안 하면 불안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해야 해야 한다. 농사는 사람 키우는 것과 같다. 너무 살 찌우지 말고, 스스로 뿌리에 힘을 기를 수 있게 영양소를 적당히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뿌리가 약해지면 비료를 주더라도 고온이나 가뭄이 왔을 대 견디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며 "뿌리가 깊게 뻗어 있으면 웬만큼 고온이나 가뭄이 와도 땅 아래서 영양분을 스스로 찾는다"고 부연했다.

통상적으로 배 농사는 나무가 자라고 과수를 출하해 현금을 회수하기까지 6~18년 등 다른 과실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려 진입장벽이 높다. 또 최근 배 농가는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현재 2만8천99.17㎡ 재배면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전예재 씨는 국내 육성종 신화를 한국 배 시장에 자리 잡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8천264.46㎡ 가량 신화 배 재배면적을 늘릴 계획이다.

배를 재배하는 이들은 보통 60대 후반 이후에는 배나무를 늘리지 않는다. 성목이 되려면 20여 년 정도가 필요하고 과실을 따려면 80대 후반이 되기 때문이다.

전 씨의 결정에 대해 주변 농가들은 ‘후계농도 아직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92년도에 직장을 관두고 배 농사를 시작했을 때 걱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후회가 없다"며 "지금 심어서 내가 살아서 따먹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지만 오늘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꾸준히 배를 키우겠"는 각오를 전하며 미소지었다.

이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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