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동차든 가전제품이든 구매 후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편이 아니다. 도전정신(?)으로 일단 무턱대고 시도한다.
지난번 휴대폰을 바꾸고서도 그 설명서는 들쳐 보지도 않았다. 무작정 휴대폰의 이것저것을 만져보면서 그 기능을 습득했다. 눌러가다 보면 금방 그 기능을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데도 설명서를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한 연구에 의하면, 대다수의 사람은 설명서를 잘 읽지 않는단다.이미 내가 알고 있고, 그 정도야 내가 잘할 수 있으며, 나에게 필요한 핵심만 알면 되지 불필요한 것까지 알 필요가 없다는 착각 때문이란다.
의외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생각한다는 건, 사실 꽤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자신이 인지한 것에 대해 의문이 있어야 하고, 그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그간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그 결과를 되새김해야 한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여하튼 생각하기도 피곤한 작업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깊이 생각하는 에너지 소모보다는 쉽고 단순한 경로를 선택한다.
뭐 엉켜진 실타래를 언제 일일이 풀고 있나? 단칼에 잘라버리면 쉬운 것을….
이러한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인지의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생각을 아끼는 이런 경향은 직관에 의존하거나 선입견, 고정관념을 통해 사물이나 현상을 쉽게 그리고 단순하게 판단하게 한다. 결국, 나아가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편하고 쉽다. 일일이 따져 ‘생각의 비교견적(?)’을 내는 건 귀찮고 수고스럽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형성된다.
생각이 비슷한 친구와의 대화가 편한 이유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장시간 대화를 하는 것은 불편하다. 심한 경우 짜증 폭발이다. 그것이 취미가 됐든, 정치가 됐든 그 외 어떤 소재든지 말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내 생각은 늘 다수고 옳다. 세상의 주류라는 안정감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자존감이 뿜뿜 솟는다.
그러나 ‘생각하기의 피곤함’을 회피한 착각일 수 있다.
생각을 아끼고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힌 ‘인지의 구두쇠 확증편향자’는 선전과 선동의 희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전적 의미로 선동이란 ‘남을 부추겨 어떤 사상을 갖게 하거나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며 선전은 ‘주의나 주장, 사물의 존재, 효능 따위를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도록 잘 설명하여 널리 알리는 일’이다.
그러나 공중(公衆)의 이해와 친선을 도모하는 홍보(PR)와는 달리 선전, 선동은 대중 혹은 군중을 대상으로 특정조직의 목적달성을 위해 정보의 왜곡, 과장, 축소, 거짓 등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선전가, 선동가들은 ‘생각하기를 피곤해하는 확증편향자들’에게 자신의 특정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성적 정교한 논리보다는 단순한 구호와 자극적 감성이 아스팔트를 휩쓸고, 디지털 매체의 숏폼(Short-form)이 쏟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생각, 신념, 확신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사실, 스스로 한쪽 눈을 감아버린 절반에 불과한 세상일 수 있다. 자칫 생각하기를 아끼면, 편향을 얼떨결에 강요받아 아무 생각 없는 ‘얼떨리우스(?)’로 전락할 수 있다.
한 눈이 찢어진 복서는 상대를 정확히 때릴 수 없다. 애꾸눈의 야구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늘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내 생각이 그릇 될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확증을 찾아가는 과정’에 소홀해서는 안되지만, 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역시 생각하기는 피곤하다.
정상환 한경국립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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