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포렌식’. 각종 사건·사고를 다루는 기사나 정치 관련 이슈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단어다.
디지털 증거물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 기법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거나, 삭제된 데이터를 복원할 때 활용된다.
다만, 모든 전자기기를 대상으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대상은 자동차다. 현재 차량 내부에는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기록되지만 이러한 데이터의 활용 및 삭제는 제조사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상황이다.
용인에 위치한 CP6는 점차 고도화되는 자동차 기술에 맞춰 차내 저장된 데이터를 추출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일종의 포렌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해당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향후 차 사고 발생 시 운전자 과실과 차량 결함 등을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고, 차량 내부에 저장된 개인정보가 함부로 노출되는 상황도 대폭 감소될 전망이다.
중부일보는 자동차 포렌식 기술 ACAT(에이캣)을 개발한 박준일 CP6 대표를 만나 자동차 포렌식 기술의 필요성과 앞으로의 구상에 대해 들어봤다.
◇ACAT으로 차량 포렌식 나선다=CP6는 2021년 3월에 문을 연 비교적 신생기업이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기술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박 대표는 CP6를 창업하기 이전 각종 법무법인에서 활동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다.
박 대표가 개발한 ACAT(Automated-driving Car Accident-analysis Tool·자율주행 모빌리티 사고분석 도구)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율주행 자동차의 사고 당시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하는 포렌식 기술이다.
ACAT을 활용하면 자율주행 자동차에 탑재된 DSSAD(Data Storage System for Automated Driving·자율 주행 정보 기록 장치)를 기반으로 사고 당시 자율주행시스템(ADS),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차선유지보조시스템(LKAS) 등이 어떤 식으로 작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박 대표는 "DSSAD는 6개월 이상 운행 기록 또는 2천500건 이상의 사건을 저장해야 하며, 사고 시 80여 가지 항목을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DSSAD 데이터는 제조사를 통해서만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수사기관이나 보험사에서 빠르게 사고를 처리하기 어렵다"며 "ACAT을 이용하면 전문 장비가 없어도 데이터를 수집해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자율주행 자동차는 ‘SAE J3016 표준’에 의해 5단계로 구분된다. 1~2단계는 크루즈 컨트롤, 차선 중립 등의 간단한 기능만 보조하고, 사람이 직접 운전해야 하는 단계다.
3단계부터는 인공지능이 자동차 제어를 대부분 담당하며 운전자의 역할이 대폭 축소된다. DSSAD는 3단계 이상부터 의무기록장치로 들어간다.
반대로 1~2단계 자동차에는 DSSAD가 들어가지 않고, EDR(Event Data Recorder·사고 데이터 기록장치)이 들어가는데 ACAT은 EDR 데이터 또한 확인할 수 있어 범용성이 넓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급발진 여부를 확인하는 사례에도 EDR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EDR 역시 제조사가 아닌 이상 따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ACAT이 상용화된다면 급발진 이슈도 우리의 설루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CP6는 ACAT을 운전자용, 수사기관용, 보험사용 등으로 구분해 개발하고 있다.
◇차량에 담긴 개인정보도 안전하게 삭제=이처럼 활용도가 높아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ACAT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ACAT은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CP6가 메인 타깃으로 삼은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이 아직까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테슬라 등이 주도하는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시장은 여전히 3단계 이상 자율주행 자동차 성과가 뚜렷하지 않아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박 대표는 "해외 많은 자동차 업계 및 보험업계에서 ACAT에 관심을 내비쳤으나, 상용화 논의는 대부분 홀딩돼 있는 상황"이라며 "외국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야 부담없이 ACAT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국내에서는 아직 ACAT이 활약할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새로운 수입창출원을 마련하기 위해 ACAT을 역으로 활용한 ‘ACAT 프라이버시’를 구상했다.
ACAT 프라이버시는 일종의 개인정보 보호 서비스로, 기존에 사용하던 차를 중고차로 되팔거나, 렌트카와 같은 공유차량을 이용했을 때 차량 내부에 남아있는 개인정보를 완전 삭제해주는 서비스다.
박 대표는 "포렌식 업체는 데이터를 삭제하는 기술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를 활용한 것이 ACAT 프라이버시"라며 "자동차에는 우리의 통화, 문화 메시지 기록부터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운전자가 삭제한다고 해도 100% 삭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ACAT 프라이버시는 현재 관련 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내비치며 올해 상반기 중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자동차 데이터 시장을 선도하는 CP6="앞으로 자동차는 스마트폰과 같이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시장을 갖게 될 것입니다. CP6는 이러한 자동차 데이터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박 대표는 향후 CP6의 계획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먼저 박 대표는 해외 시장을 계속해서 공략해나갈 예정이다.
실제 ACAT은 지난해 CES 2024에서 혁신상을 받고, 에디슨 어워즈 모빌리티 분야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올해는 CES 2025에 참가해 국내·외 업체들과의 미팅을 통해 상용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한 박 대표는 향후 국내 자동차 데이터 시장을 성장시키며 관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 대표는 "지난해부터 미국에서는 자율주행 센서 데이터 기반의 스타트업 보험사가 생기는 등 자동차 데이터 활용 비즈니스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관련 시장이 닫혀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데이터를 수집할 능력이 있는 만큼 앞으로 데이터 시장을 여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마지막으로 그는 "과거 스마트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제조사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이 플랫폼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자동차는 앞으로 거대한 스마트폰이 될 것이다. 우리가 시장을 선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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