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위 글은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 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일부이다. 40여 년 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일랜드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주인공 펄롱은 땔감인 나무나 석탄을 팔며 아내와 다섯 명의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는 성실한 가장이다.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그는 당시 공공연한 비밀을 목격하게된다. 사회보호시설이라는 명목 하에 갈 곳 없는 고아 소녀들을 데려다 강제노동과 학대를 가했던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사랑이 충만해야 할 수녀원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보게 된 암울하고 불행한 모습들이다.

불편한 진실로 인한 한 남자의 내적갈등과 사소한 삶의 일상 행동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바로 위에 인용한 장면 같은 것이다.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좋고 아름다운 선행도 그저 그렇고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그런데 그 작은 일들도 실행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것이다. 탐욕과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이다.

주인공이 처음 수녀원의 겉과 속이 다른 진실을 알았을 때 놀랍고 두려운 맘에 자신의 트럭을 몰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더 잘못된 길로 접어들다 더 이상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때, 길가에서 잡초를 쳐내는 한 노인을 만나 길을 묻는 장면이다. 그리고 노인의 말에서 가지 못하는 길이란 없다는 것, 모든 길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리를 얻는다.

우리들은 항상 길 위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 길이 좋은지 나쁜지, 앞이 뻥 뚫렸는지 꽉 막혔는지, 또 아니면 좁은 골목길로 이어지는지 넓은 탄탄대로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들의 인생사도 인생의 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럴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사는 마을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축제 분위기 속에 음식과 작은 선물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축제에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이들이 바로 수녀원에서 갇혀 강제 노동 착취를 당하는 소녀들이다. 어디에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이다. 비단 그 시절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곳에서 힘의 논리로 많은 사람들이 영혼과 신체의 자유를 유린당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22년 오웰상을 수상하고 지난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이 작품의 문제의식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의미다. 예전보다 물질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많이 풍요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음지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펄롱은 결국 수녀원 석탄창고에 갇힌 여자아이를 몰래 탈출시키며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길에서 만난 그 노인의 말대로 펄롱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자신의 의지대로 간 것이다. 아이를 몰래 빼냄으로써 본인 석탄사업장의 최대고객이자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큰 수녀원과 관계가 틀어질 위험이 컸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길을 갔다. 그 길이 옳은 길이었다.

옳다고 생각한 길이라면 주인공 펄롱처럼,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가야 한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또는 그저 타성에 젖어 옳은 길이 아닌 줄 알면서 한 선택 뒤에는 깊고 오랜 후회만이 남는다.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아니 우리 주변에서 옳지 않은 일들이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두렵고 용기가 없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만다. 꿩이 수풀에 머리만 숨겨 몸뚱이를 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듯이 우리들도 불의를 보고 눈감아 외면 하면 결국 어리석은 꿩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현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하기 위해 당당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내 앞에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땐 날아오르란 말이 있다. 그래 내가 가면 길이 된다. 이 길로 어디든 내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 옳고 바른 길로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가 보자.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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