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이후 중국 혐오 지속적 고조
안성 고속도로 붕괴사고에도 음모론
전문가 "폭파 등 테러 가능성 없어"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가다실 등
의료·복지 관련 허위 의혹도 계속
최소한의 근거도 없는 경우 대부분

"멸공, 멸공, 멸공!", 지난달 28일 현시대에는 다소 낮선 단어가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퍼졌다.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NO CHINA’, ‘CCP(중국공산당) OUT’등이 쓰여진 피켓을 들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중국 선거개입설 등의 주장을 펄쳤다. ‘자유민주화운동’이라는 단체가 연 ‘멸공 페스티벌’은 2월 들어 금요일마다 열렸다. 지난해 12월 12일 ‘중국 간첩설’을 포함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고조돼 온 ‘혐중 정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다이빙 주한중국대사가 지난달 19일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의 만남 자리에 이어 25일 한국언론 간담회에서도 이에 관한 우려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이는 한복이나 김치를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등 그간 중국이 보여 온 패권주의적 행태나, 위구르·티벳 등 소수민족 탄압과 홍콩 민주화 시위 진압 등 반민주적 조처 등에 기인한 면이 컸다. 그러나 최근 양상은 중국인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는 등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혐중 정서를 자극하는 음모론이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포되고 있고, 거리 시위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에 중부일보는 ‘수원 선관위 연수원 해커설’과 ‘중국인 건강보험 부정수급설’에 이어 근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와 ‘디씨인사이드’에 떠도는 혐중 음모론과 루머를 팩트체크한다.

 

◇안성 교각 붕괴가 중국 테러?=지난달 25일 오전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천안 구간에서 공사 중이던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돼 10명의 사상자를 냈다. 사고 원인에 관한 최종적인 결론은 아직이지만, 경찰·소방 당국과 전문가들은 부실 시공에 의한 사고로 견해를 모아 왔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는 불구하고 음모론이 나오고 있다. 사고 당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게시판인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에는 사고 소식을 전하면서 "이것도 수상해 왜 중국인만 죽었을까? 혹시 테러범 아닐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같은 날 ‘미국 정치 갤러리’에 올라온 ‘[일반] (조심하자) 테러 지령 냄새가 솔솔’이라는 게시글은 이날 있었던 서울시 3개구 단수 소식과 교각 붕괴 소식을 함께 놓고 "모든게 의심 되노;; 사탄들은 그러고도 남을놈들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게시글 갈무리. 이날 일어난 고속도로 건설현장 붕괴사고가 테러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 갈무리
지난달 25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게시글 갈무리. 이날 일어난 고속도로 건설현장 붕괴사고가 테러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 갈무리

전문가는 이런 주장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일축했다. 한국테러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만종 호원대 명예교수는 "관계 기관의 공식 조사 결론이 나야 한다"면서도 "이 사고는 부실 시공에 의한 사고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시설 테러는 보통 C4 폭약을 사용한다"고 구조물 테러의 특성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폭약이 사용되면 연기는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을 띄고, 형태는 둥글게 만들어져 버섯구름 형태가 된다"며 "또 열압력에 의해 현장에는 방사형으로 파괴흔이 남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붕괴사고 당시를 찍은 영상을 보면 이런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사고 직후 목격자가 SNS에 올린 차량 블랙박스 영상과 이튿날 언론이 공개한 현장 CCTV 영상을 보면 폭발 열압력으로 인해 자재가 튕겨나간다든가 교각 구조가 틀어진다든가 하는 모습은 없으며, 화면 상 나타나는 연기는 연한 회색으로 아래에서 위로 피어오르는 형태다.

이 교수는 또 "폭파는 순간적인 굉음과 진동을 주변에서 느낄 수 있다"며 "일반적인 붕괴는 뚝 뚝 하는 소리가 난다" 지적했다. 이에 따라 봐도 이번 사건은 폭파로 인해 일어났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중부일보는 사고 당일 보도에서 마을 주민이 "동네 사람들이 올라가는 등산로 비슷한 길이 있는데, 사고 발생 전 아침에 교량 부근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더라"며 사고 전조증상을 느꼈다는 것을 보도한 바 있다. 사고 당시가 찍힌 두 영상에서도 열압력이나 진동으로 인한 카메라 흔들림은 확인되지 않는다.

지난달 25일 일어난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천안구간 건설현장 붕괴사고 CCTV 영상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 캡쳐. 화면 상에 나타난 붕괴 당시 모습에서 폭파의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래에는 부실공사가 중국인 때문이라고 말하는 댓글이 보인다. /SBS뉴스 채널 갈무리
지난달 25일 일어난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천안구간 건설현장 붕괴사고 CCTV 영상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 캡쳐. 화면 상에 나타난 붕괴 당시 모습에서 폭파의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래에는 부실공사가 중국인 때문이라고 말하는 댓글이 보인다. /SBS뉴스 채널 갈무리

중국인이나 중국 기술이 들어와 부실시공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고 당일 인터넷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올라온 ‘[속보]천안 고속도로 붕괴 희소식!!’이라는 게시글에는 "중국인들이 한국 건설업에 너무 들어와서 순살아파트 대변 아파트가 생기는거다 싹다 몰아내야 한다", "한국이 저런적이 없었는데 중국인들이 들어 오고부터는 사고다발이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사고 당시 현장 CCTV 영상을 다룬 ‘SBS뉴스’의 유튜브 영상에도 "중국 따라가나? 작업자들이 관리 감독이 다 중국임?" 등 중국인 노동자나 중국 업체가 부실시공의 원인이라는 식의 의혹들이 나왔다.

그러나 이 또한 근거가 희박하다. 당시 현장 투입 노동자는 전체 10명인데, 이 가운데 중국인은 3명에 불과하다. 중국인 3명은 모두 한국 기업인 장헌산업 소속이다. 국토부를 중심으로 꾸려진 사고대책본부는 사고가 교각 수평 지지 부재인 ‘거더(Girder)’를 설치한 특수설치 장비인 런처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사고 당일 발표했다. 이런 작업은 장헌산업이 개발에 참여해 2009년 건설신기술 제582호에 오른 ‘DR거더 런칭가설 공법’에 따라 진행되던 것으로 중국과는 관련이 없다. 전문가들은 공법 자체가 아닌 현장 관리감독 소홀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국토부는 지난달 26일 해당 공법을 사용한 도로 건설 현장의 공사를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중국인만 공짜로?=지난달 17일 디씨인사이드 ‘90년대 갤러리’에는 ‘한국인은 가다실 66만원 ㅋㅋㅋㅋ 짱× 뗏× 공짜’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자궁경부암 예방을 주 목적으로 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예방 백신인 가다실을 중국인에게만 무료로 접종해 준다는 주장을 담은 SNS서비스 스레드(Threads)의 한 게시물을 인용했다. 인용된 게시물은 약 650개의 ‘좋아요’를 받고 100회 가까이 재게시 됐으며, 8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SNS 서비스 ‘스레드’의 한 이용자가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가다실’을 중국인은 공짜로 맞는다는 거짓 정보를 게시했다. /스레드 갈무리
SNS 서비스 ‘스레드’의 한 이용자가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가다실’을 중국인은 공짜로 맞는다는 거짓 정보를 게시했다. /스레드 갈무리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중부일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확인해본 결과 가다실4가와 9가, 서바릭스 등 HPV 백신은 모두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기본적으로 누구든 자비로 접종을 받아야 한다.

다만 질병관리청 국가예방접종사업의 일환으로 일부 대상에 무료 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대상자는 ▶만 12~17세 여성 청소년 ▶만 18~26세 차상위 또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 여성으로 중국인 등 외국인을 특정해 지원하는 내용은 없다. 접종사업에 포함되는 백신은 가다실4가와 서바릭스 뿐이다. 게시글의 ‘66만원’이라는 내용은 1회 접종에 21만원에서 23만원이 드는 가다실 9가 백신을 기본적인 접종 횟수인 3회 맞았을 때 추산되는 가격인데, 가다실 9가는 건강보험은 급여는 물론이고 국가예방접종사업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도 금시초문이란 반응이다. 수원 시내 A병원 관계자는 "중국인은 가다실을 무료로 접종받지 않으며, 반드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인도 마찬가지로, 무료 접종 대상자가 정해져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자비로 접종을 받아야 한다. 현재 가다실 접종은 비급여 항목으로, 병원마다 비용이 다르지만 대략 60만 원 정도다. 중국인도 가다실 비용을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무료로 접종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찬구·최준희기자

중부일보 팩트인사이드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시민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jbbodo@joongboo.com)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근거자료]

◇교각 붕괴 관련
1. 이만종 힌국테러학회장 인터뷰
2. 국토교통부 세종-안성 고속도로 건설현장 사고대응 설명자료
3.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건설신기술 자료
4.장헌산업 법인등기부등본
5. 관련 언론보도

◇가다실 무료접종 관련
1. 보건복지부 고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기준’ [별표1] 비급여 보고항목 펼침 (제5조제1항 관련)
2. 질병관리청 국가예방접종사업 보도자료
3.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화 취재
4. 수원 시내 병원 전화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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