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바보 멍청이에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들겠다는 두 재단사에게 사기당한 ‘진정 바보 멍청이’ 임금님 이야기 말이다.

권부의 신하들 뿐만 아니라 거리의 군중들도 바보 멍청이가 되는 게 두려워 "이렇게 아름다운 옷은 처음 본다"며 극찬했다. 바보 멍청이(?)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웃으며 소리치기 전까지.

재단사들은 물질적 옷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진실을 엮어 세상을 속였다.

이 동화는 권력에 대한 복종, 순응, 가식의 풍자를 넘어, 인간이 논리와 증거를 부인하거나 합리화하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의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는 다르다.

정치가들의 아부나, 학자들의 현학 그리고 군중의 휩쓸림이 세상의 실체처럼 보일지라도, 많은 이들이 동조한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기만이 이루어 질 뿐이다.

마술은 조명 바깥에서 완성된다. 마술사의 손에 눈길이 머물고 기합 소리를 듣는 그때, 어두운 무대 한편에서 가볍게 당신을 속여 버린다. 스폿라이트만 보고있다면, 마술의 비밀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

우리가 가시적인 현실이라 믿는 것은 사실 우리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마치 동굴 속 인간이 동굴의 입구로 보이는 빛만으로 동굴 바깥세상을 짐작하는 것과 같다. 우물 속 개구리가 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가? 내가 전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 절약의 지름길을 택한다.

짤막한 단서만으로 세상을 파악하려 한다. 파편의 정보를 이용하여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이런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단편 판단(Thin-slicing)’이라 한다.

얇게 자른 케이크 한 조각으로 케이크의 나머지 부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처럼 꽤 잘 맞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 ‘단편 판단’은 눈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코끼리는 밧줄이 되기도 하고, 나무토막이 되기도 하고, 바위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만으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우리가 노출된 정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다들 자기 견해가 옳다고 믿으며, 이런 믿음은 현실 세계를 편견 없이 반영한 것이라 확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한쪽이 진실을 독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논쟁을 벌일 때는 더욱 그렇다.

코끼리는 바위일 수도, 나무일 수도, 밧줄일 수도 있다. 조각을 맞추면 코끼리를 그릴 수 있다.

지금 이 세상은 온갖 정보가 난무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의견들이 우리의 마음을 뺏고자 전투를 벌이고 있다.

애꿎게 이 전장에서 우리는 치명적 내·외상을 얻는다. 이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상에 대한 나의 견해는 상당히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가 나의 신념을 확신하듯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도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더불어 현실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그 바탕이 정확하고 바른 것인지 살펴야 한다.

세상이 뒤숭숭하니 일전 나의 친한 친구끼리 논쟁 끝에 얼굴을 붉혔다는 얘길 들었다. 참 조심스런 세상이다.

각자 코끼리 다리와 코를 만졌다고 생각하시라. 그리고 조각을 맞춰 그림을 그려보시라. 그러면 그럴듯한 멋진 코끼리가 그려질 것이다.

나는 요즘 가급적 시국방담(時局放談)에 끼려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설득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환 국립한경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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