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송년회 때 학교 교직원들과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경남 진주의 한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며 살고 있는 김장하 선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떠올리는 이유는 최근 윤 대통령 탄핵 심판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그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해 김장하 선생의 고귀한 뜻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자신의 결혼 당시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실제로 살아오면서는 평균 재산보다 조금 넘은 재산이 있어 반성하고 있다는 말로 좌중에게 놀람과 웃음을 선사하였다. 탄핵 심판문도 명문이었지만, 이를 낭독한 문형배 권한대행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반 헌법적, 불법적 비상계엄으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버린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그리고 대한국민의 쓰디쓴 회초리였다.
"예전에 ‘어른 김장하’ 다큐를 보면서 큰 감동으로 눈물지었는데,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그분의 고귀한 뜻을 이루어나가는 큰 역할을 하셨네요! 큰 어른이 또 다른 어른을 키우는 아름다운 대한민국,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교육을 감히 꿈꾸며 눈물 흘립니다."
탄핵 선고 직후 필자에게 도착한 한 지인의 문자였다. 여전히 혼란이 가시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도 수치도 모른 채 거짓과 선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단호하게 혼내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회초리를 드는 어른이 필요하다.
어려서 어머니 지갑에 손을 대다 걸려 아버지로부터 회초리를 맞은 적이 있다. 회초리를 맞는 필자도 아팠지만, 회초리를 드신 부친의 마음은 더욱 쓰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면 아들은 더 큰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호되게 혼내시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때로는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이 저지른 죄악의 심각함을 고려한다면, 하느님께서 드시는 회초리는 분명 인간에게 약이 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회초리를 맞은 백성은 마음을 고쳐먹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 물론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길을 벗어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회초리를 들어 인간을 올바른 길로 안내해 주신다. 그것이 나약한 인간의 역사이며 삶이다.
‘백성의 목소리는 하느님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라틴어 격언처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판결이었으며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 헌법을 어기고 불법을 저지르며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나라를 큰 위기에 빠뜨린 잘못에 대한 국민의 회초리이자 하늘의 회초리였다. 이제 흐트러진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잘못한 것은 명확히 짚고 그 막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국민의 뜻과 마음이 한데 모여야 할 것이다. 회초리는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잘못된 생각과 행실을 뉘우치고 정의로운 삶으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내리기 쉽지 않은 시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거짓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사회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명확한 기준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과 역사이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대한국민의 고결한 땀과 피다. 헌법재판소는 그 뜻을 받들고자 하였고, 다행스럽게도 비상계엄 사태는 끝났고,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물론 이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괴로운 결과일 테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담긴 회초리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일어서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편을 가르고 탄핵된 전 대통령 지지자를 손가락질하거나, 반대편에 서서 계속 헌재의 결정에 반대하기보다는, 마음을 연 대화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다시 함께 진단하고 보다 나은 미래,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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