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다운증후군을 지닌 언니 영희와 그런 언니를 보살피는 동생 영옥이었다. 특히 영희 분은 실제 다운증후근을 앓고 있는 화가 겸 배우 정은혜 씨가 맡아 더욱 실감 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하다는 그는 최근 호주 시드니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주말, 양평 두물머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는 아기처럼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는 기자의 첫 질문에 그는 "작은 격려에서 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 복지관에서 근무할 때 김봉준 화백님께서 편지에 ‘은혜 씨는 화가가 되세요’라고 써주셨어요. 그 말이 가슴에 남았죠. 마침 어머니가 화실을 운영하고 있던 터라 입문 과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데 흥미를 느끼게 됐고 3년 후부터 ‘문호리 리버마켓’이라는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실제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등장한다. 초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된 이유를 묻자 "사람을 만나는 게 좋고, 그런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고 수줍게 웃었다. 그림은 그녀에게 ‘말’이자 ‘마음’이었다.
정은혜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역시 사람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드라마의 대본을 쓴 노희경 작가가 정 작가의 전시장을 직접 찾아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계기가 됐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해본 게 아니라서 모든게 낯설고 어려웠죠. 그래서 카메라도 조명도 신경 안 쓰고 그냥 연기만 했어요. 현장에서 한지민, 김우빈, 고두심, 이병헌 등 유명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 경험이 아직도 신기하고 생생해요."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는 집, 포장마차, 핸드폰 가게 등에서 일상을 소화하던 영희가 시설로 돌아가는 씬을 꼽았다.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나네’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대본 속 대사를 읽으며 자신과 닮았다고 느낀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연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어떤 일이든 ‘신나게, 재미있게’ 하는 편"이라며 "그래서인지 연기도, 그림도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혜 작가는 오는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림 그리며 일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하고,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하루하루. 그 일상 속에 따뜻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정 작가는 그런 일상을 함께해준 이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늘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 저를 낳아주시고, 지금까지 키워주시고, 언제나 사랑으로 품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부모님을 하늘만큼, 땅만큼, 그보다 더 많이 사랑해요."
예비 신랑에게도 따뜻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영남 씨, 앞으로 함께 웃음이 가득한 가정을 만들어가요. 당신의 어머님도 정성껏 모시며, 가족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노력할게요."
그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걸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그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채워간다. 그의 삶은 말하지 않아도 진심이 느껴진다. 꾸미지 않아 더 아름다운, 은혜 씨만의 이야기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최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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