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누가복음 23장 46절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외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기독교는 이 구절을 통해 영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육체의 죽음 이후에는 그분께로 돌아간다고 이해한다. 예수는 인간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성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로 강조한다(시 8:4-5, 창 1:26-27). 특히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과 같이 사람을 만들자"라고 계획했음을 밝히며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강조한다.
성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가 흙이라고 말한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네마샤)이 부여되므로 비로소 살아있는 영혼(네페쉬 하야)이 되었다.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육체가 동물의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설명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영혼에 관한 온전히 이해가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과학적 이해와 종교적 이해는 각기 다른 인식론적 틀을 가지며,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은 종교적 진술을 통해 보완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생명을 가진 다른 존재들과 구별되는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 근거하여 영혼을 불멸하는 참된 자아라고 보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지만, 이를 전인적 인간에게 형상을 부여하는 생명 원리로 이해하며 인간을 ‘정신-육체의 통일체’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의 영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불멸하는 비물질적 실체라고 보았다.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히브리인들은 인간 존재를 긍정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했다. 인간의 몸과 영혼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생명 원리로 보았다. 반면 그리스-로마인들은 인간을 몸과 영혼의 결합으로 보는 이원론적 관점을 가졌으며, 영혼이 육체에 갇힌 상태를 일종의 비극으로 여겨 영혼의 해방을 구원의 목표로 삼았다. 초기교회의 교부였던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인간에 관한 진리가 기독교의 특정 교리를 넘어 모든 이성적인 인간을 위한 보편적인 진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를 당대의 그리스-로마 철학, 과학, 의학의 인간 이해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이해를 활용하여 사도 바울의 ‘몸과 혼과 영’이라는 세 가지 실체로써 성서적 인간관을 당대인들에게 설명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철학적 인간론이 제시하는 이성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지며 자아실현적인 존재라는 설명만으로도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철학적 인간론에서 어렴풋이 감지했던 것처럼, 이데아 또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의 실체적인 손길이 인간의 영과 혼을 감싸는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설명하는 성서적 인간론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순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믿는다. 기독교 신학에서 생명의 근원은 인간의 영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신적인 영에 의존되어 있음을 믿는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총체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소명을 인식하고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된다.
물질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인 현대 사회에서 영혼의 존재와 그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 환원하지 않고, 영혼과 육체의 통합된 존재로 이해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 또한 있다. ‘영혼’은 단순히 육체와 분리되는 비물질적 실체를 넘어, 인간의 구체적인 존재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 역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독교 신학적 설명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이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며, 인간의 영혼을 활성화하여 인간을 신과 교제하는 영적인 존재로 이해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 단순히 피조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은 진화생물학의 환원주의적 관점, 즉 유전자 생존 전략의 복잡한 발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고 기독교 신학은 설명한다.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영혼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삶을 보장하는 티켓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격과 가치관,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영혼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며 이룩한 신적 이타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곧 우리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기독교 신자들이 성탄절만큼이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부활절을 궁극적인 인간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사건으로 이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차종관 세움교회 목사·성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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