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면 화살통을 둘러메고 숲을 누비는 사냥꾼이 있다.

그는 쉼 없이 달린다. 사슴의 흔적이 보이면 맹렬히 쫓고, 살갗을 찢는 가시덤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열정은 뜨겁다. 그에겐 목표를 향한 돌진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조준이 빗나가고, 길을 잃어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다른 사냥꾼은 새벽부터 주위를 살피고 바람의 방향을 계산한다.

그리고 조용히 땅을 파고 은밀하게 덫을 설치한다. 설치가 끝나면 높은 나무에 올라 기다린다. 한가해 보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함정에 쏠려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덫이 작동할지 주시한다. 감정은 숨기고 시간은 인내로 채운다.

선거는 민심의 숲에서 벌어지는 사냥이다.

누군가는 여론을 쫓아 달리지만, 누구는 정적(靜寂) 속에 수(數)를 놓는다.

엉겁결(?)에 다가온 대선판에서, 우리는 열정의 ‘화살형 정치인’과 냉정의 ‘함정형 정치인’을 맞닥뜨리고 있다.

화살형 정치인은 민심의 숲을 헤집고 다닌다.

군중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감지하고, 분노를 키우고, 희망을 띄워 올린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아스팔트는 흔들리고 유튜브 등 SNS는 순식간에 들썩인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의 대세다.

다만 흥분의 고삐를 놓지 않으면 그의 화살은 빗나가고, 대중에게도 자신에게도 치명적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함정형 정치인은 말보다 침묵을, 속도보다 계산을 중시한다.

그는 격정적이진 않지만, 철저히 승부수를 설계한다. 여론의 바람결을 읽고 차분히 땅을 판다. 그리곤 시간이 흐르면 덫에 걸릴 커다란 포획물을 기대한다.

그러나 자칫 그의 과도한 계산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수도 있다.

화살형은 오늘을 사로잡지만, 내일을 놓칠 위험이 있다.

함정형은 내일을 기획하지만, 오늘의 심장을 겨누지 못할 수 있다.

선거는 오늘과 내일을 잇는 모멘트가 되어야 한다.

과열된 열정과 건조한 냉정이 공존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사냥꾼만 영리한 것이 아니다. 사슴도 몇 차례 경험에 의해 촉이 좋아졌다.

정치인이 보내는 화려한 수사(修辭)에 환호를 보내던 시절은 지났다.

유권자는 화살 끝의 진위를 가늠하고 덫 뒤의 의도를 간파할 줄 안다.

"누가 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누가 더 핑계를 대지 않으며, 누가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을까?"

유권자야말로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진정으로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 꼼꼼히 견주어 본다.

이번 대선은 화살과 함정의 대결이 될 공산이 (섣부르긴 하지만) 큰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진정성 없는 화살은 허공을 가르고 지나치게 계산된 함정은 스스로가 빠질 수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는 결국 진심을 품은 사냥꾼일 것이다.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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