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에 이어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되었다. 많은 사람이 ‘콘클라베’라는 교황 선출 방식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최근 개봉된 ‘콘클라베’라는 영화와 그 시기가 겹쳐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콘클라베라는 말의 어원은 ‘쿰 클라베(cum clave)’로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을 의미한다. 곧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이 있는 성당의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전 세계 80세 미만의 모든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콘클라베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모든 접촉 및 통신이 금지된다. 하루에 2번 시스티나 성당에서 비밀투표를 하며, 투표수의 2/3 이상의 득표를 얻는 이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어떤 신자는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교회에 너무 큰 실망을 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영화에서는 진보파와 보수파 사이의 여론몰이와 내부 알력 등이 일반 정치권에서의 권력 다툼과 별반 다름없는 것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최근 여러 보도를 통해 콘클라베 과정을 엿들을 수 있었다. 레오 14세 교황은 유력한 교황 후보는 아니었지만 첫 투표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신속히 지지세를 결집했다고 전해진다. 한 신문은 필리핀 출신 추기경의 말을 빌려 선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는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우리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유흥식 추기경도 콘클라베가 끝나자 웃음꽃이 피었다고 전한다. 영화 콘클라베에서는 수많은 우여곡절로 선출이 지연되었는데, 이번 교황 선출에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교황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신자들에게 강복을 주는 자리에서 보여준 추기경단의 모습은 권력다툼으로 인해 실망한 모습이 아닌 너무나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선 상황을 비교하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우리나라가 큰 혼란에 휩싸였고, 그로 인해 초래된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제 대선 후보 등록이 마감되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이 시기는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과 함께 우리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고 기대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권에는 극심한 갈등과 대립이 이어져 왔기에, 대선 과정에서도 매우 큰 갈등이 예상된다. 후보들 사이에 매우 과격한 말싸움이 오갈 것이며, 비방과 비난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콘클라베처럼 평화롭고 안정적인 선출 과정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더 이상의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지 않는 대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바람일까?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레오 14세 교황을 매우 반기는 분위기다. 미국 출신으로 페루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활동하였고 특히 빈민가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수도회 출신으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회 쇄신 방향을 이어받는 동시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편에서 교회를 이끌고 세상에 호소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도 레오 13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레오 13세는 ‘새로운 사태’라는 회칙(문헌)에서 첫 산업혁명 상황에서 대두되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교황이다. 레오 14세는 오늘날 교회가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와 노동을 보호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는 AI 분야의 기술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레오 13세의 사회교리 유산을 이어받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바로 그 지점에서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치에서 환멸을 느끼는 것은 국민의 안위는 뒷전에 두고, 정당이나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고만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 때문이다. 대선 과정에서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바로 사회의 어두운 그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이어야 한다. 정치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면,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 더욱 인간답고 안전하며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기 위한 정책과 지혜를 모으는 선의의 경쟁이 되었으면 한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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