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 금단농산 대표. 이보현 기자
김유철 금단농산 대표. 이보현 기자

김유철(62) 금단농산 대표는 버섯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대표는 양평 지역에서 40년 넘게 버섯 농사를 지어왔으며, 현재 느타리를 연간 1천900t(톤) 가량 재배 중이다. 이는 국내 느타리 농가 중 최대 생산량으로, 전국 30%의 느타리버섯이 김 대표의 손을 거치는 셈이다.

그는 올해 경기도버섯연구회 회장으로 선출돼 처음 시작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버섯 농가들에게 버섯 생육 정보를 아낌없이 공유해 도 버섯산업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금단농산의 느타리 병 재배 시설 내부 모습. 이보현 기자
금단농산의 느타리 병 재배 시설 내부 모습. 이보현 기자

◇버섯과 함께 성장한 인생= 어릴 적부터 대를 이어오던 농부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김유철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시로 향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1985년 다시 양평으로 와 쌀 농사를 돕게 됐다.

1990년대가 되자 마을에 버섯 특화단지가 생겼고, 이 때 때이김 대표는 부업으로 버섯을 처음 접했다.

당시 국내 버섯 생육 기술은 아직 발달하지 않아 많은 버섯 농가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금방 사라지는 시기였다.

김 대표도 몇 차례 실패를 겪었다.

특히 1990년대는 느타리를 ‘균상재배’만 하던 시절이었다. 균상재배는 시설비용과 생산비가 적게 들어가지만, 심는 양에 비해 생산량이 적고 재배시간이 다른 재배방법보다 오래 걸린다.

균상재배는 선반에 배지(버섯균의 먹이)와 솜을 깐 뒤 버섯균을 주입해 구멍 난 비닐을 덮고 선반 위에서 버섯을 배양하는 방식이이다.

비닐을 덮는 이유는 버섯균이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습기를 비닐 안에 가두기 위해서다. 습기를 촉촉하게 먹은 버섯균만이 비닐에 난 구멍 사이로 자라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버섯 연구가 부진하고 기술도 발달하지 않아 버섯농가들은 균상재배 시 비닐을 덮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는 피복(비닐을 덮는 과정)도 안 했기 때문에 배지가 금방 건조해져서 지속적으로 물을 줘야 했다. 근데 물을 줘도 속까지 건조해진 상태면 흡수가 잘 안 됐다"며 "흙에 구멍도 내보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버섯을 수확해야 해서 가보면 버섯이 병에 걸려서 다 빨갛게 변해버리는 등 실패가 많았다"며 "당시에는 가습기를 놔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가습기 놓을 돈이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버섯사 바닥과 벽에 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느타리에만 의존하지 않고 팽이버섯도 함께 재배했다.

당시 팽이버섯은 ‘병 재배’로 키웠다. 병 재배는 병 모양 용기에 톱밥과 배지를 넣고, 살균 후 버섯균을 접종한 뒤 배양하고 생육하는 방식이다.

병 재배는 균상재배보다 시설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동일한 크기의 병 용기들을 실내에서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해 자동화 기계로 운영하니, 버섯을 심는 양만큼 동일한 생산량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연간 생산물량을 예측할 수 있고 계획생산이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느타리를 재배하던 다른 농가들이 버섯 재배의 어려움을 겪고 다들 포기할 때도, 김 대표는 팽이버섯을 키우는 등 끊임없는 버섯 연구와 실험, 공부, 투자를 통해 버섯 농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농업기술원에서는 느타리도 병 재배를 할 수 있도록 특화된 배지를 만들어냈다.

앞서 쌀 농사를 접고 다른 버섯 농장에 취직까지 해 버섯 공부에 몰두하던 김 대표는 느타리의 병 재배가 가능해졌다는 소식에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땅을 더 분양 받고 균상재배를 하던 공간을 과감한 투자로 모두 병 재배 공간으로 바꿨다.

김 대표는 "당시 버섯농장에 취직해도 (기술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그러다 느타리 병 재배가 확산되던 2004년에 땅 분양을 받아서 농사를 시도했으나 주변 텃새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표가 느타리 병 재배를 처음 시작했던 2004년, 김 대표의 1일 입병량은 2천688병이었지만 21년이 지난 올해는 4만320병이 됐다. 약 20배가 넘게 증가한 것이다.

현재 매일 6t의 느타리를 출하해 연간 총 1천900t을 생산하는 김 대표는 이제 느타리 업계에서는 ‘전설’로 불리고 있다.
 

김유철 금단농산 대표가 본인이 재배한 느타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보현 기자
김유철 금단농산 대표가 본인이 재배한 느타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보현 기자

◇버섯 키우며 모여사는 사형제=1녀 4남 중 장남인 김 대표는 남동생 3명과 함께 양평에서 느타리 농사를 짓고 있다.

2010년, 김 대표의 아버지가 별세했을 당시 셋째가 김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셋째에게 9천917㎡ 정도의 땅을 분양해줬다. 이후 셋째는 형의 도움으로 버섯농사를 지었고 현재는 양평 지역에서 손꼽는 버섯농가로 자리잡았다.

2013년에는 도시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둘째도 학원을 접고 양평으로 왔다. 둘째는 당시 양평에 개인 소유의 땅이 있었고, 기존에 버섯 농사를 짓던 김 대표에게 여러 조언을 구해 버섯 농사를 시작했다.

이후 몇 년 뒤 도시에서 택배 일을 하던 넷째도 양평으로 내려왔다. 넷째는 둘째와 셋째가 일궈놓은 땅을 분양받아 버섯 농사에 발을 들였다.

현재 사형제는 양평에서 가장 큰 규모로 버섯농가를 운영 중이다. 김 대표를 제외한 셋은 양평에 내려온 지 10~15년가량 됐지만, 김 대표보다 더 큰 규모의 버섯 농가를 운영하는 등 모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김 대표는 동생들과 양평에서 다 같이 버섯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던 비법에 대해 "장남인 내가 욕심부리면 안 된다. 동생들이 잘 하면 얘기하는 대로 따라주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다 도와주면 된다"고 말했다.
 

병 재배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는 느타리. 사진=이보현 기자
병 재배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는 느타리. 사진=이보현 기자

◇"버섯, 유일한 취미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할 꿈"=62세인 김유철 대표는 22세부터 버섯 농사를 지어와 인생의 대부분을 ‘버섯’에 바쳤다.

그는 "늘 버섯만 바라보고 살았다"며 "나는 취미가 다른 게 없다. 오직 버섯을 보고, 배우고, 잘 키우는 것 뿐"이라고 했다.

또한 "2013년에는 버섯을 키우는 법만 알지 이론상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경기도 마이스터대학교에 다니며 버섯에 대해 공부했다"며 "2014년에는 학생들이 유럽에 있는 양송이 농장으로 연수를 간다길래 따라가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버섯 농사는 내 꿈이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버섯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생산성이 많이 늘어나길 바라며, 앞으로 노하우 등을 모두에게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이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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