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블랙 코미디

정치는 잘하는 세력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누가 계속 못하느냐에 승부가 갈린다.

한 정당이 영원히 못하면, 그게 곧 정치의 독점을 부른다. 국민은 선거라는 요식행위를 하지만, 실상은 선택지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자민당을 보라. 70년 가까이 일본을 지배했지만, 국민이 선택한 건 아니다. 그냥 내부에서 돌고 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경쟁하는 게 아니라, 당내 파벌끼리 싸우며 나누고 ‘누가 덜 미운가’를 가리는 데 바빴다. 국민은 구경만 할 뿐이었다. 일본은 그렇게 ‘정치가 없는 정치’를 만들어냈다.

정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는 국민이 아니라 당 내부의 합종연횡으로 결정한다. 유권자는 추인할 뿐이다. 선거를 치른다지만 실상은 ‘인사 절차’에 가깝다. 권력을 나누는 방식이 곧 정치가 되는 순간, 정당은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거울만 본다. 내부 균형, 내부 셈법, 내부 리스크만 계산한다. 국민은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고, ‘견제’는 장식이 된다.

이쯤 되면 슬슬 데자뷔가 온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긴다면 일본식 장기집권 모델이 한국에도 슬쩍 이식될지 모른다. 지방 권력, 의회 권력에 이어, 대권까지 싹쓸이하면 권력의 중심은 한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여론의 흐름까지 민주당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야당’이라는 말은 남아도 기능은 희미해진다. 그다음부터는 친명, 친문, 비명 등 ‘우리끼리의 경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적당히 자리를 나누고 국민은 들러리일 뿐이다. "저 사람 말고 저 사람" 하는 정도의 선택.

하지만 민주당이 이긴다고 해서 장기집권이 저절로 굴러가는 건 아니다.

문제는 늘 야당의 무능이다. 일본 자민당도 야당이 무능해서 버틴 거다. 만약 국민의힘이 야당이 된다 해도, 딱히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늘 싸우고, 쪼개지고, 때로는 화해하는 척도 하지만, 금방 다시 싸울 것이다. 국민의힘은 ‘반민주당’이라는 명찰 하나 붙이고 버틴 게 전부다. 이긴다 한들 그건 반사이익일 뿐, 또 다른 분열의 출발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나?

국민의힘이 이겨도 상황은 만만찮다. 그날의 축배는 단 하루, 다음 날부터는 ‘누가 우리 편인가?’를 두고 치열한 자리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TK 기득세력과 수도권의 젊은 피, 혁신파와 수구파가 뒤엉켜,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될 것이다. 문제는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추는 참가자들끼리 끝없는 서바이벌을 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매번 "혁신!"을 외치지만, 그 혁신은 선거용 포스터에만 나온다. 국민은 뒷전이다. 실제론 공천권 나눠 먹기, 계파 줄 세우기, 누가 더 목소리 큰가 싸움만 남는다. 준비 없는 승리는 독이다. 민주당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얻은 정권이라면, 가는 길 도처에 씽크홀 투성이가 될 거다.

결국 민주당이 이기든 국민의힘이 이기든, 남는 문제는 같다.

정치가 ‘국민의 것’이 아니라 ‘정당의 소유물’이 되는 순간, 우리는 선택권을 빼앗긴다.

견제와 대안 없는 정치, 이미지와 구호만 남은 정치, 그리고 국민을 정치의 ‘관객’으로만 여기는 정치. 이게 바로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 정치는 이 고질병을 치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야 모두 매번 "민생! 개혁!"을 외치지만, 그 구호는 선거용 현수막에만 적힌다. 정작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민이 원하는 건 소소한 문제라도 풀어주는 정당인데, 당은 그저 다음 선거에서 이길 구도 짜기에만 몰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기력한 구경꾼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다. 견제는 국민의 권리이고, 무능한 정당에 따끔한 회초리를 드는 것도 국민의 몫이다. 문제는 그 회초리를 드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이다. 때론 ‘덜 나쁜 선택’을 해야 하고, 때론 ‘덜 싫은 얼굴’을 골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국민을 무시하고, 나아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누가 이기든 중요한 건 ‘이번 판’이 아니라 ‘그 이후’다.

진짜 문제는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덜 못할 것이냐이다. 그리고 국민이 그걸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정치가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못하는 정당끼리 정치하는 정치, 그만 보고 싶다.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즉시제보 : joongboo.com/jebo
▷카카오톡 : 'jbjebo'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사회부) : 031-230-2330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에서도 중부일보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