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어김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이 잠을 깨운다. 눈을 간신히 뜬 채 습관처럼 휴대폰을 집어 들고 날씨를 확인하고, AI가 큐레이션 한 뉴스를 훑는다. 정치, 경제, 기술 소식들이 스크린 위를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간다. 어제 검색했던 키워드에 기반한 영상과 기사들이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떠오른다. 이제는 정보를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아니라, 시스템이 먼저 나를 찾아온다. 그 간편함 속에 얼마나 많은 선택이 이미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었는지조차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 채 또 하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자동차로 출근길에 오른다. 한강 변 도로는 여지없이 붐비기 시작했고 내비게이션은 정체 구간을 미리 감지해 우회 경로를 재빨리 안내한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 길을 따른다. 판단은 기계가, 실행은 인간이 한다고 믿었지만 그 경계는 이미 흐려지고 있다. 그사이 차 안에 흐르는 Chet Baker의 트럼펫 소리조차도 내가 고른 것인지 알고리즘의 제안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질문하고 판단할 권리를 조금씩 시스템에 양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후에는 AI 교육 커리큘럼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기술은 날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무엇을 배울까’가 아니라 ‘왜 배워야 하는가’다. 어떤 기능을 익힐지보다,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할지가 훨씬 본질적인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술을 넘어선 교육, 사유와 윤리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다.

최근 출간된 ‘AI 혁명’에서 저자 송경희 교수는 "우리는 기술보다 인간다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AI 기술이 바꿔놓은 우리의 일상과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을 함께 짚어낸다. 취향이 설계되고 예술이 생성되는 시대, 우리는 기술의 수용자가 아니라 방향을 제시할 주체가 되어야 한다. 편향된 알고리즘, 프라이버시 침해, 딥페이크 같은 윤리적 위협 속에서도 우리는 ‘기술을 잘 쓰는 인간’이 아닌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기술은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기술을 원했지만, 어느덧 기술이 우리의 선택을 좁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기 위해서는 ‘속도’보다 ‘방향’, ‘정확성’보다 ‘의미’를 고민하는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해가 저물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몸을 기댄다.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손은 다시 스마트폰을 향한다. 피드에는 내가 잠깐 관심을 보였던 콘텐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화면을 넘기고 눈은 반사적으로 그 흐름을 좇는다. 하루의 끝마저도 플랫폼이 설계한 루틴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편리함은 진정 나의 선택인가?

기술은 분명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때때로 사고를 멈추게 하고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가’에 집중해 왔지만 이제는 ‘무엇을 자동화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감정, 관계, 삶의 방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진짜 두려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에 익숙해진 우리 안의 무관심과 무감각이다.

지난 14주간 이어온 AI·DX 제2기 교육 프로그램도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단지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알고리즘의 구조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한 시간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배우고 실천해 온 이들이 앞으로는 ‘선한 영향력’을 전파할 새로운 주체가 되리라 믿는다. 속도보다 방향을, 자동화보다 사유를 중시한 그들이 있기에 다음 시대는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 중심의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기술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나는 과연 나다운 선택을 하고 있는가? 시스템이 안내하는 경로와 자동화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알고리즘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있는가를 나는 조용히 묻고 싶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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