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을 받아보니 불과 몇 줄로 심리불속행 기각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왜 기각하는지에 관한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너무나 성의가 없는 판결이어서 대법원에 불만이 많습니다. 적어도 왜 상고 이유가 받아들여질 수 없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기각당한 민원인의 하소연이다. 대부분의 상고사건은 4개월 이내에 이른바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상 심리불속행 기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다 사건이 위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서 심리하기로 진행중인 경우에도 재판은 금방 종결되지 않고 몇 년이 가도 깜깜무소식이어서 당사자는 답답하기만 하고 심지어 그동안 사건에 대한 문제가 이미 실기되어진 탓에 판결이 선고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까지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대법원에 몰린 과중한 업무량 때문이다. 대법원의 대법관 수는 총 14명인데 그중에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4명씩 3개부를 구성하여 재판을 담당하게 되고, 특별한 경우에는 전원합의체를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법연감에 따르면 대법관 1인당 사건처리 건수는 2022년 4천38건, 2023년엔 3천305건이었다. 하루평균 9~11건이다. 대법관 1인이 하루에 약 10건 이상을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은 1심과 2심의 변론자료와 증거자료까지 모두 포함되어 기록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고 쌍방의 주장도 첨예하게 대립되어 그 결론을 내리는 데에 상당한 시간과 고민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대법원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어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에 사건을 접한 국민은 재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지고 있지만, 대법관은 나름대로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시중에 ‘대법관은 임용받은 날 하루만 좋고 다음 날부터는 고생의 연속이다’라는 볼멘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그러면 위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은 무엇일까? 그동안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다. 우선 하급심 심리를 강화하여 상고사건 자체를 줄여보자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하급심에서 아무리 결론을 잘 낸다고 해도 불만이 있는 당사자가 이에 불복하면 상고심 사건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상고허가제의 도입을 드는 안이 있다. 그러나 항소심 사건에 대하여 상고허가제로써 대법원 사건 수를 줄이겠다는 것은 국민의 3심 재판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상고허가심리에 거의 3심과 같은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2014년 대법원에서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이다. 그러나 항소심 후에 상고법원을 거치고 다음으로 일부 사건만 대법원에서 심리한다는 것이었는바, 실질적으로 4심이 될 우려가 있고 대법관에 의한 상고심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법무부와 변호사 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대법관을 증원시켜 상고심 사건을 처리하자는 안이다. 이 문제도 종래 변호사 단체에서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대법관증원안을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이는 대법원전원합의체를 구성할 수 없어 충실한 심리를 통한 권리구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어 버린다는 것 등의 이유이다.

한편 지난 4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개정안을 의결했다. 시행은 공포 후 1년 뒤이며 1년에 4명씩 4년간 총16명을 늘리는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장은 대법관증원 문제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려 있는 것이므로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생각건대, 상고심 체제에 대한 문제는 국민의 권리행사에 관한 중대한 제도이다. 그러므로 국회는 법조계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결정하여야 한다. 다만 종전에도 수차례 갑론을박만 하다가 유야무야된 사례가 많았는바, 이번에야말로 숙의를 거친 후에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 상고심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오로지 국민의 권리보호와 재판의 신뢰확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법이 억울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으며 법제도가 진일보할 수 있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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