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드는 자치법규다. 쉽게 말해 우리 동네의 법을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다.
2025년 6월 현재 우리나라 자치법규(조례와 규칙) 총 숫자는 14만9천197건이며 이중 조례는 12만1천608건이다.
현행 법률 총 숫자가 1천635건이니 조례는 약 80배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조례가 우리 주위에 있는데도 우리는 실감하지 못한다.
쓰레기 배출 시간, 주차 규정, 공원 이용 규칙, 반려동물 지원, 자전거 이용 활성화, 금연구역 지정 등 우리 일상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사항을 조례에서 다룬다.
국회에서 만드는 법률은 우리가 직접 개입하기 힘들다. 하지만 조례는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와 함께 주민이 직접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조례 제1호는 1956년 8월 4일 공포된 ‘서울시 공무원 복무조례’였다.
5·16 군사 정변으로 지방자치는 암흑기를 겪다 1995년 지자체장 직선제가 부활해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돼 올해가 30년째다.
조례도 양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995년 지방자치 원년 때 조례 총 숫자(제·개정 건수)가 1만2천500여 건이었으니 지금은 10배 가까이 늘었다.
조례가 늘어감에 따라 지방의회의 수준도 높아졌다. 과거에 공무원들이 만들어주던 조례를 이제는 지방의원들이 다양하게 직접 만든다.
상위법령의 범위에서 만들어야 하는 조례가 새로운 법률을 견인하기도 한다. 1991년 청주시의회가 만든 역사적인 ‘청주시 행정정보 공개조례’가 그것이다.
당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는 상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의결을 지시했으나 결국 대법원은 청주시의회의 손을 들어줬다.
청주시의 이 조례는 2년 만에 전국 180여 개 지자체로 확대됐다. 이어 1996년에는 정부에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지금은 청주시 조례처럼 조례가 새로운 법률을 끌어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전남 나주시의 '무상급식 조례', 전북 부안군의 ‘치매 환자 지원 조례’ 등이다.
하지만 조례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첫째, 주민을 위한 법이라면서 정작 주민이 보이지 않는다.
행안부 통계 2024년 한 해 주민 조례 발안 건수가 16건에 지나지 않는 것이 방증이다. 요건이 까다롭고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주민들의 관심은 멀어지고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다.
조례의 규정에 따라 살고 있으면서 조례의 존재를 모르니 자기모순이 따로 없다.
생업에 바쁜 주민이 조례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진정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둘째, 조례를 제대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만들 수 있는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남이 만든 조례를 베끼거나 흉내 내는 조례가 아직도 많다. 지방의원들의 치적용으로 치부되다 보니 내용보다는 건수가 우선이다.
지방의회에 정책지원관이라는 전문직을 채용하나 조례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니 의회에 들어와 배울 수밖에 없다.
조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기본적 법률 지식은 물론 지방자치와 관련된 체계적인 공부가 뒷받침돼야 한다.
공무원 시험처럼 일종의 자격증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조례 동향에 정통하고 조례 관련한 대법원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해석할 정도의 능력이 요구된다.
최근 행안부 사단법인으로 ‘한국조례학회’가 결성됐다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바람직한 일이다. 학회는 조례를 심층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전문 인력 양성에 나서야 한다.
셋째, 새로 출범한 정부는 자치분권에 기초한 헌법과 관련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아직도 찔끔 나눠주기식의 지방자치는 시대착오적이다.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만이 살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5극 3특’의 초광역권 공약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과 지방자치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에 따라 조례도 명실공히 지방의 자치법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큰 틀에 어긋나지 않으면 법령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넷쩨, 궁극적으로 조례는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무엇보다 주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길로 가야 한다.
조례는 주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자치 입법 수단이다. 조례는 나의 삶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결국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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