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우 속 기형적 상태로 방치
부러진 국기봉에 매달려있는 곳도
시민 "도로변이라 펼치려다 포기"
관리의무 소홀·국기모독 해당 여지
"이럴 거면 차라리 국기를 달지 말았으면 하네요."
용인에서 구두 수선업을 하는 60대 남성 A씨는 자신의 영업장 바로 위에 비바람에 젖어 구겨진 채 방치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A씨는 돌돌 말려버린 국기를 직접 원상태로 펼쳐보려고도 했지만, 높이가 꽤 높은 데다가 게양 위치가 차도와 인접해 위험해 포기했다.
17일 경기도 일대 대로변에는 5대 국경일(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중 하나인 제헌절을 맞아 태극기들이 게양돼 있었다.
하지만 일부 태극기들은 이날 내린 기록적 폭우를 그대로 맞아 흠뻑 젖은 채 국기봉이 부러지거나 국기가 말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등 기형적인 모습으로 방치돼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께 폭우 속에서 수원, 용인, 오산 일대에 게양된 태극기 중 비에 젖어 구겨진 상태로 고정된 모습은 도로상 50m당 한 곳꼴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광명시 하안동에선 국기봉이 부러져 꺾인 채 태극기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제헌절이 다른 국경일과 달리 지난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헌법의 제정과 공포를 경축하는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 이날 호우 속에 도로상에 걸려있는 태극기의 모습에서 엿보이는 듯했다.
행정안전부의 법령 해석과 과거 사례에 따르면, 태극기가 기형적인 상태로 방치된 경우 ‘대한민국국기법’ 제9조 중 관리의무 소홀에 해당하며, 장기간 방치되면 같은 법 제8조 중 국기모독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
한 기초자치단체 관계자는 "도로변에 게양된 국기의 재질이 속건·방수 성능을 가지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올바른 형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관계자의 말과 달리 비가 어느 정도 그친 뒤인 이날 오후 4시께 현장을 다시 확인한 결과, 태극기들은 오전과 동일한 형태로 구겨진 채 젖어 전신주나 표지판 등에 달라붙어 기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집중호우 대응을 위한 회의를 열고 풍수해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또 중대본 3단계를 가동해 부처와 유관기관의 비상대응태세를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최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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