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정부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라고 공식화했다. 역대 대통령들도 정부 성격을 규정하는 구호를 내건 적은 있었지만, 공식적인 명칭으로 채택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부의 ‘참여정부’, 그리고 이번 ‘국민주권 정부’다. 이들 명칭은 공통적으로 국민 정치의 주역이 되는 직접민주주의와 자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생활 개선’에 무게를 두었고, 주민투표제 도입은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실질적인 제도 설계는 다음 정부로 넘겼다. 또 읍면동사무소의 명칭을 ‘주민(자치)센터’로 바꾸고,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이는 제대로 된 기초자치의 시작이라기보다 오히려 풀뿌리 자치를 왜곡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시도했다. 지방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었지만, 제도적 내용은 충분하지 못했다. 주민투표는 주민의 발안에 대한 주민결정에 한정되었고 절차와 대상도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실제 활용은 저조했다. 지방의회가 의결한 조례안에 대해 주민이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주민투표제는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읍면동사무소의 ‘주민(자치)센터’로의 명칭 변경과 기능전환이 확대되었지만, 진정한 읍면동 자치와는 거리가 더 멀어졌다.

이재명 정부의 국민주권 정책은 기획하는 단계여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국민주권정부’라는 명칭에서 직접민주주의와 읍면동 기초자치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국민주권은 국민이 국가정책의 최종결정권자라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이는 추상적 선언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우선, 국민은 국회가 만든 법률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면 국민이 이를 거부하고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국민투표권이다. 이는 대통령의 거부권보다 더 직접적인 민주적 통제 장치다. 다음으로, 국회가 당리당략에 갇혀 입법을 제때 하지 못할 때, 국민이 직접 헌법과 법률을 제(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발안권이 도입되어야 한다. 즉, 국민입법권이다. 국회의 입법권 행사를 보장하되 보완적으로 국민의 통제하에 두는 안전장치가 직접민주주의다. 현대적 직접민주주의의 발명자인 프랑스의 콩도르세는 이를 ‘국민검열권’이라고 했다.

19세기 대의정치 하에서 권력독점의 심각한 폐단을 겪었던 스위스에서는 시민들이 치열한 민주화운동으로 현대적 직접민주주의를 헌법에 도입하였다. 직접민주주의는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그 후 미국을 비롯하여 오늘날 30여 개국에서 스위스식 직접민주주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시하고 있다. 20세기를 선거권 확대의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직접민주주의 확대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부에서 지방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지만, 핵심 요소는 빠져 있다. 재정 문제에 관한 주민투표가 금지된 탓에, 용인경전철 같은 대규모 예산 낭비를 주민이 막지 못했고, 최근의 주민소송에서 주민이 승소했지만,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이제라도 진정한 국민투표제와 국민발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읍면동 기초자치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지는 생활 기반의 풀뿌리 정치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이를 ‘기초공화국’이라 불렀고, 국가 전체를 유지하는 공화적 시민을 양성하는 시민학교로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주민자치회가 관변 조직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읍면동 자치와는 방향이 다르다.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자치회는 제도 설계 자체에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과감히 폐기하고 거의 70년이나 자치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읍면동에 스위스나 서구의 정치 선진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진정한 기초자치를 도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주권의 주체는 모든 국민이다. 루소, 콩도르세 같은 사상가들은 주권을 전체 국민의 의지로 보았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만을 국민이라 간주하고, 나머지를 배제하였다. 그는 공포정치를 비판하는 콩도르세를 혁명의 적으로 몰아 체포하여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적으로 몰락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는 결국 스스로 민주주의의 적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진짜 대한민국’은 ‘진짜 민주주의’와 ‘진짜 자치’로 실현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직접민주주의와 읍면동 풀뿌리 자치의 실현이야말로 그 출발점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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