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원시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남녀노소 다양한 시민들 70여 명이 배심원단의 자격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는 신청인, 피신청인이 있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참고인으로 함께 했다.

이름하여 ‘모의 시민배심법정’. 수원시가 주최한 이 행사는 단순한 시뮬레이션을 넘어, 시민들이 공공갈등 사안에 대해 문제 해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장이자, 숙의 민주주의의 현장이었다.

참여한 시민배심원들은 우선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진술을 들었다. 이어서 사안의 성격을 반영하여 초청된 환경 전문가, 법률 전문가, 수소 전문가, 지방재정 전문가의 심층적인 설명을 들었고, 여러 질문을 통해 의문점을 하나하나 해소했다.

짧은 휴정 후 시민배심원들은 조별 평의를 하면서 평결문을 작성했다. 실제 시민배심법정에서는 하나의 배심원단이 평결을 하지만, 이번 모의 행사에서는 최대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조를 구성했다.

시민배심법정(또는 시민배심원제)은 최근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타운홀 미팅과 종종 비교된다. 두 제도 모두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타운홀 미팅의 경우 다양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성격이 강한 반면, 시민배심법정은 특정 사안에 대해 배심원들이 직접 평결을 내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수원시는 2011년 6월 ‘수원시 시민배심 법정 운영 조례’를 제정한 이래로 14년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 조례를 도입한 것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수원시가 최초이다. 그동안 광교역명 유치 갈등 사안처럼 시민들 간에 서로 입장 충돌이 있던 사안에 대해서 시민배심법정을 활용하여 해결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시민배심원제는 정보와 자원, 그리고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시민이라도 오늘날의 큰 도전에 대한 강력한 해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신념에 기반한다. 1971년 미국의 네드 크로스비에 의해 시작되었으니 50년 넘게 운영된 제도이다.

예를 들어, 1984년 미국 미네소타 주의 시민배심원들은 농업이 수질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다룬 바 있고, 2012년 또 다른 24명의 시민배심원들은 미국이 국가부채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6일간 논의를 하기도 했다.

호주의 벤디고라는 도시에서는 2016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어디에 예산을 써야 하는가?"라는 시의회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시민배심원제가 진행되기도 했다.

시민배심원들의 평결은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평결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수십 명의 시민들은 다양한 관점에 대해 이해하고, 여러 가지 상반된 주장을 검토하면서, 최대한 상식적인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때때로 일부 판사의 판결이 상식을 벗어나서 황당함을 느끼는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가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판사의 경우 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만, 공공정책에 있어서는 양쪽의 의견 모두가 법적으로 일리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들을 모두 법정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가 사법 과잉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물론 집단지성의 형태인 시민들의 평결도 완전할 수 없다. 불완전한 시민들이 최선을 다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전분투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수원시는 2015년 ‘공공갈등 예방 및 해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며, 갈등관리 시스템을 한층 튼튼히 했다. 공공갈등 사안들에 대해 매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필요시 갈등영향분석이나 갈등 조정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비슷한 이름의 조례를 가지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들이 100개가 넘지만, 수원시만큼 꾸준히 갈등관리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시민배심법정에 대한 수원 시민들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고, 그 효과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공공갈등 사안들이 이 제도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시민들의 지혜가 지방자치단체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이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형준 (사)한국갈등해결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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