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한 포기의 소중함, 더욱더 뼈저리게 느낍니다."
최근 이어진 폭염과 폭우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습니다. 그 안타까운 상황들을 마주하며, 농업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고 있는지 다시금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기후변화로 인해 채소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자, 올해 봄 배추농사에 도전했습니다. 30여 년간 김치 생산과 배추 재배에 종사해온 친구의 조언을 받아 생애 첫 배추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화성시에서 수확 시기를 기존 6월에서 5월로 앞당겨야 한다는 판단 아래, 평년보다 열흘 이상 빠른 3월 20일, 배추 모종 2만 5천 포기를 식재했습니다. 당시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 화성 송산농협 포도 영농지원반의 도움으로 재배를 시작했지만, 처음 접하는 일이기에 낯설고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3월 말 찾아온 꽃샘추위는 모종 냉해 우려를 키웠고, 저는 흰색 부직포를 밭 전체에 덮어 20여 일간 모종을 보호하며 정성껏 관리했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잘 자라주었지만, 농사는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온 건조한 날씨 속에서 배추의 시듦을 막기 위해 점적관수를 설치했고, 농업은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시간과 인력을 들여 제초작업을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병해충 예방과 성장을 위한 살균제, 살충제, 영양제 살포도 빠질 수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모든 작업에서 필요한 인력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였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력난은 현장의 고충을 더욱 크게 만들었습니다.
5월 말, 마침내 수확의 기쁨이 다가왔습니다. 배추 속 온도를 낮은 상태로 유지해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해가 뜨기 전인 새벽 2시, 머리에 랜턴을 착용한 채 수확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보는 광경에 놀랍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극한직업이 떠오를 만큼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정성 들여 기른 배추를 직접 수확하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또다른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유통 조건에 맞는 배추만 선별해 한 번에 수확해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생육이 늦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수천 포기의 배추는 결국 수확되지 못한 채 폐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부라도 하고자 했지만, 수확, 운송 등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해 더 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김치 한 포기’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진심으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마트에 늘 진열된 김치는 너무도 당연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농민의 땀과 인내, 유통 종사자들의 수고, 그리고 기후(자연)와의 치열한 싸움이 존재합니다.
기후위기의 충격은 이제 농업 전반에 걸쳐 직격탄이 되고 있습니다. 봄철 냉해, 여름의 폭염, 국지성 폭우, 병해충 증가는 배추처럼 기후에 민감한 작물의 재배를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장철 배추 수급 불안정이나 가격 급등은 더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 아닙니다. 우리 식탁의 정체성이자 전통이며 문화입니다. 그 김치의 뿌리는 바로 배추입니다. 농업이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 모두가 함께 인식해야 하며,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기상정보를 세심히 분석하고, 생육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배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정부와 지자체는 스마트팜 보급, 영농형 태양광 확대 같은 기후적응형 농업 인프라 구축에 더욱 힘써야 하며,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절실합니다.
김치 한 포기의 소중함은 곧 농업의 중요성, 귀중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김치의 가치, 더 나아가 음식의 가치와 기후위기 속 농업의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고 지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홍경래 전 농협중앙회 경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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