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이다.
그래도 판은 벌어지고, 포석이 놓이는 게 정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북적인다.
‘받아 놓은 밥상’이라는 자신감일 거다.
반면 국민의힘은 묘한 정적(靜寂) 속에 있다.
늘 앞다퉈 나서던 정치인들이 유독 조용하다.
계엄과 탄핵, 정권 상실을 거친 기억은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기력과 자포자기의 기류가 잦아들지 않는다.
‘타죽을 게 뻔한데 왜 뛰어들어야 하냐?’는 냉정하고도 영악한(?) 셈법일 거다.
더욱이, 경기도 아닌가?
보수진영에 경기도는 결코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다.
TK처럼 결과가 뻔한 텃밭이 아닌, 경기도는 민심의 사막이자 자갈밭이다.
무려 1천400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의 욕구는 복잡하고도 까다롭다.
정치적 상징성과 수도권이라는 무게감까지 더해져, 경기도는 늘 승패의 분수령이자 한국 정치의 풍향계로 여겨진다.
그만큼 아무 정치인이나 덤빌 자리가 아니다.
만만한 후보로는 안 된다는 걸 여야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다.
무력감에 빠진 보수 유권자들은 지금, 여러 이름을 대입하며 질문을 던진다.
"무게 있고, 밑바닥을 알고, 중도를 아우를 인물 없을까?"
그러다 맴도는 이름, 원유철.
‘그라면 어쩌면, 판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는 기대가 일부 야당 지지층 사이에 감지된다.
그는 28세에 최연소 경기도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32세에 15대 국회에 들어섰다.
김민석, 추미애, 김문수, 홍준표 등 거물급 정치인들과 입문 동기다.
5선 국회의원, 국방위원장, 원내대표, 당대표까지 누적된 이력은 분명 중량감이 있다.
특히 고향 평택에서 도의원으로 시작해 정무부지사, 도당위원장을 거쳐 경기도의 행정과 민심을 비교적 오랜 시간 밀착 경험한 정치인이라는 평이다.
그의 정치 스타일은 현재 국민의힘에선 보기 드문 특징이 있다.
그는 강한 언변이나 선동적 구호보다 설득과 설명에 능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념보다는 현실, 대결보다는 연결을 중시하는 중도보수적 실용 정치인이라는 세평이다. 이는 현재 보수 진영이 부족하다는 ‘중간’ 지향점을 그가 가지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그의 단순한 복귀가 아닌 ‘보수의 무기력’에 대한 대안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그가 내년 지방선거에 어떤 의중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역 정가에서는 그가 다시 무대에 오를 거라 본다.
그러나 그의 귀환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달라진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는 변화할 수 있을까?
원유철의 상수(常數)는 역시 국민의힘이다.
현재의 야당은 지리멸렬이라는 표현 밖에 떠오르지않는다.
스스로 혁신으로 대오를 갖추고 정책 대안과 비판의 투쟁이 복원되지 않는 한,
야당의 입지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야권 후보들의 고민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도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원유철의 ‘정치적 연륜’은 양면성이 있다.
풍부한 경험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올드하다’는 이미지도 사실이다.
경험(經驗)이 경륜(經綸)은 아니다.
그간의 체득이 지혜와 혜안으로 증명되어야 기회도 주어진다.
‘경험의 재해석’을 통해 ‘미래형 리더십’으로 전환되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상처와 교훈을 딛고 ‘과거의 콘텐츠’가 아닌, ‘지금의 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행보가 필요하다.
그에게 ‘정치는 말의 예술’이라는 오랜 격언을 전하고 싶다.
경험이 그의 무기라면 그 경험을 말하는 방식도 시대와 호흡해야 한다.
원유철의 경험은 분명 장점이다.
다만, 그 길을 설명하는 말이 오래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정치가 압축적이고 선명한 메시지 중심으로 변모한 지금,
그의 과거 스타일은 시대의 언어와 간극이 있다.
‘메시지의 리부트(reboot)’가 없다면 공감도 이끌어 내지 못하리라 본다.
정치는 결국 기억의 싸움이라 하지 않는가?
한국 정치에서 ‘원유철’은 익숙한 이름이다.
그렇다고 지금, 환호와 열광이 있는 건 아니다.
이제, 원유철은 자신의 이름을 부를 이유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단지 낯익은 얼굴의 반복’이 아닌, ‘보수의 활력’이 될 때 환호는 터져 나올 것이다.
정치는 늘 다음을 준비한 자에게 기회를 준다.
이제, 원유철은 그 ‘다음’을 설득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왜 돌아와야 하는가?"
그가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덧글 : 이글은 지난 ‘김동연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을까?’의 후속이다.
김동연이 ‘현재의 중심’이라면, 원유철은 ‘사라졌던 중심’이다.
단순한 회상이 될지, 현실이 될지는 오롯이 원유철의 몫이다.
정상환 The Brain & Action Communicator,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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