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앱스타인 스캔들'에 빠졌다.
관련된 머독은 그럼에도 기사는 나가야
한다는 편집의 독립성을 고수하고 있다.
좋은 뉴스와 특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 지난 얘기
지금부터 전개될 얘기는 이른바 미국의 ‘엡스타인 스캔들’에서 시작된다. 세계적인 부호 엡스타인은 알려졌다시피 아동 성폭력과 성매매 혐의로 수감됐다가 감옥에서 자살했다. 그런데 뒤늦게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가 엡스타인의 생일 때 여자 나체 그림을 직접 그리고 음란한 문구를 넣은 생일 축하 편지를 보냈다는 폭로가 나왔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엡스타인의 성 접대 리스트안에 트럼프가 포함된 것이란 의심도 포함된다. 과거의 동지에서 지금은 적으로 묘사되는 일론 머스크도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해당 리스트가 공개되지 않기를 원한다는 말로 트럼프를 뒷발질 했다. 문제는 이렇게 해당 논란이 살아있는 권력과 어쩌면 어느정도 눈치를 주고 받아야 하는 언론과의 정면충돌로 비쳐지면서 얘기가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트럼프는 작심한 듯 이런 내용을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모회사 다우존스·뉴스코퍼레이션, 사주인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할 루퍼트 머독 등을 상대로 13조9400여억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언론 재벌 머독이 순순할 리 없다. 당사자인 트럼프와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등이 머독과 WSJ 편집국장, 뉴스코퍼레이션 최고경영자 등에게 수차례 압박을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잘라 말하자면 이런 불리한 기사를 내지 말라는 요구다. 권력에 가까울 제도권 언론에 통할 리 없다. 이런 사실 뒤에는 ‘사주는 편집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오래된 미국 언론의 그리고 보수성향의 머독 신념이 철저히 작용했다.
머독은 두 번의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WSJ는 트럼프가 2기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멕시코·캐나다에 관세 부과를 예고했을 때도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 전쟁’이라고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한 바 있다. 기사는 나가야만 했고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언론의 직진성으로 판단된다. 다만 그간 머독은 소유한 매체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유명인의 사생활 폭로나 선정적 사진 게재 등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고 독단적이고 비윤리적인 경영 등을 이유로 주주들의 해임 요구에 직면한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몇 언론인에게 머독은 진정한 신문인으로 각인되며 좋은 뉴스와 특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도 기억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할 지는 여전한 의문이다.
# 기억되는 한 가지
한 마디로 머독이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기사를 막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 지금의 이 사달과 무관치 않다. 실제 과거 여러차례 할리우드 제작사의 고위 인사들이 보도를 막고 싶거나 막으려 머독에게 자주 전화한 사실은 회자되는 얘기다. 그럼에도 머독은 하나같이 ‘미안하지만, 기사는 나간다’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이런 머독에게 트럼프는 기사가 보도된 뒤 WSJ에 소송을 제기하며 머독의 엉덩이를 어찌하겠다는 위협도 전해진다. 알다시피 머독이 창업한 뉴스코퍼레이션은 WSJ와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대중지 더선 등을 보유한 미디어 제국이다. 물론 이들 매체와 트럼프 사이에는 밀월관계가 어느정도 지속돼 왔다. 그러나 이번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트럼프와 머독 소유 보수 매체들은 싸한 분위기로 넘어갈 확률이 커 보인다. 실제로 머독은 얼마전만해도 축구 클럽 월드컵 결승전의 VIP석에서 트럼프와 함께 경기를 관람한 사이지만 이번 헤프닝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트럼프와 완전히 돌아서게 됐다.
생각하기에 이 두 사람은 분명 미국을 보수화시킨 장본인들이다. 그럼에도 정치인의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듯이 트럼프의 측근이었던 일론 머스크처럼 그 유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막기 어렵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과거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시 WSJ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한국의 트럼프’ 같다고 한다"면서 자신을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라고 소개한 바 있다. WSJ은 "이 대표는 북한과 더욱 대립각을 세우고, 일본과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에 포탄을 판매해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을 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온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와 단절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표현에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어제 아침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타결되면서 이런 이 대통령의 이런 얘기는 어느 정도 맞아 가는 듯 보인다. 다만 트럼프의 그것과 이 대통령의 면면을 짜 맞추기는 여전히 난해한 숙제다.
# 앞으로 모를 얘기들
대개의 권력자들이 그러하듯 트럼프도 궁지에 몰리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인권목사로 알려진 킹 목사의 1968년 암살 사건 전모를 담은 FBI 기밀문서 23만장의 공개와 1기 집권 때 ‘킹의 사생활’이란 제목의 20쪽 분량 FBI 기밀문서 공개도 다르지 않다. 급기야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엡스타인 스캔들로 궁지에 몰리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킹 목사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세계의 경찰국가에 대통령도 사생활에 관한한 궁지에 몰리고 언론과의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지금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리는 이들에 둘러 쌓여 있다. 이들은 트럼프가 스캔들에 거명되는 것이 ‘딥스테이트(숨은 권력 집단)’의 함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 미국 공히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지지층들이 늘어간다는 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 반열에 올리자는 우상화 법안이 미 의회에서 발의되고 국가 시설에 트럼프의 이름을 붙이고, 트럼프의 생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며, 화폐 도안에 트럼프의 초상을 새기자는 법안까지 나왔다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미안하지만 기사가 나가야 하는 이유다.
문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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