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해사법원 유치 문제를 두고 부산과 인천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양측 모두 각자의 강점과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해사법원의 설립 목적을 생각한다면 두 지역 모두에 해사법원이 함께 설치되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부산은 오랜 시간 해운, 항만, 조선 산업의 중심지로서 국내 해양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부산항은 물동량과 환적 규모에서 세계적인 항만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울산과 거제를 포함한 동남권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 산업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인천은 인구 규모와 경제활동 인구, 학령인구 비율 등 미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조건에서 부산에 비교하여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서울과의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국제해상 분쟁처리 및 법률서비스 제공을 위한 우수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의 접근성 및 글로벌 서비스 산업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 역시 높다.

최근 인천과 부산에 해사법원을 각각 설치하는 법안에 여야가 잠정 합의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항만과 해양 물류의 중심지이자 해사 사건이 집중되는 두 도시가 이제 명실상부한 해사 사법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해사 사건의 복잡성과 전문성을 고려하면, 이 결정은 단순한 지역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 사안이다. 그러나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해사고등법원, 즉 항소심 재판도 인천과 부산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법원행정처는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에서 관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해사 사건의 재판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과 1심과 2심 판사가 동일 지역 또는 동일 재판부일 경우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대적 흐름을 도외시한 구시대적 관점이다. 지금은 지방분권과 사법 접근성 향상이 시대정신이 된 지 오래다. 부산과 인천에 해사법원이 설치되는 목적 자체가 전문성과 지역 분권을 통해 재판의 효율성과 국민 편익을 높이기 위함인데, 항소심을 서울에서만 진행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법원 중심의 편의주의적 사고에 불과하다. 해사법원이 인천과 부산에 각각 설치된다면, 그 항소심 역시 해당 지역 고등법원인 인천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이 담당하는 것이 심급제도의 원칙과 법 체계에 부합한다. 이를 서울고등법원이 관할하는 방안은 심급제도의 기본 구조에 어긋나며, 논리적 근거는 물론 법적 정당성도 부족하다. 오히려 재판의 접근성과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해사 사건은 매우 전문적이고 국제 거래, 선박 사고, 항만 규제 등 복잡한 법률과 해양 관습이 얽혀 있다. 이러한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1심뿐 아니라 2심 역시 인천과 부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역 분산이 아니라 재판부 구성의 다양성과 독립성 보장 제도이다. 인천이나 부산고등법원에서도 독립적이고 균형 잡힌 재판부 구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해사법원이 단순한 재판기관이 아닌, 국가 해양 정책과 물류 경쟁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략 거점이라는 점에서 보면, 2심 재판까지 해당 지역에 설치되는 것은 국가 해양주권 확립과 지역 경제 균형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국회와 사법당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부산과 인천에 해사법원 설치를 넘어, 해사고등법원 설치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인천과 부산은 이미 항만·물류·선박·보험 등 해양 산업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으며, 사법 인프라 또한 이를 뒷받침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해사법원 설치 논의는 ‘시작의 끝’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회와 사법당국은 진정한 국민 중심의 해사 사법체계를 설계해야 할 때이다. 인천과 부산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해양법률서비스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영화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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