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서울 가기가 만만치 않다. 지하철은 멀리 돌아가고 차를 몰고 가면 많이 막혀 한가한 때에도 광화문까지 1시간 이상 걸린다.
얼마 전 개통한 GTX를 탔더니 킨텍스역에서 서울역까지 17분에 주파했다.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이런 놀라운 교통수단을 생각하고 입안한 사람들과 시공한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서울시청 근처 목적지에 도착하니 집 현관부터 딱 45분 걸렸다. 요즘은 모여도 정치 얘기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건강에 해로울뿐더러 남은 인생을 그런 것으로 허비하기가 싫어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인 사람 중에 한 분이 현 시국 얘기로 갑자기 열을 올렸다.
아직도 혈기가 남아있나 보다. 아니면 먹고살 만해 신경 쓸데가 없어서 그러나? 세상을 향한 울분과 분노는 항상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 세상을 향한 분노에도 이유가 있다. 마오쩌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지나친 불평불만이나 분노는 자신을 곤란하게 하니, 세상만사를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문화대혁명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공식 사망자만 170만 명에 달하는 대참극을 일으킨 장본인의 말 치고는 너무나 한가롭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분노는 소위 위정자나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도 남을 통해 투사시킬 수밖에 없다. 참석자 중에 사업을 하는 분이 사마천의 사기 ‘맹상군 열전’을 점잖게 소개한 것이 인상에 남는다.
중국 전국시대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사람이 잘나가다 권력을 잃게 되자 옆에서 아부하던 사람들이 다 떠났다. 절치부심하여 권력을 되찾자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세태에 분노한 맹상군에게 풍환(馮驩)이라는 참모가 말한다.
“무릇 사물은 반드시 그리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그리되는 도리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언젠가는 죽게 되는 것은 필연적 결과이고, 부귀하면 사람이 몰려들고 빈천하면 친구가 줄어드는 것이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맹상군은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염량세태(炎涼世態)가 세상 이치다. 서운해할 것도 없고 괘씸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라 돌아가는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라가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저 불안하게 쳐다볼 뿐이다.
나와 생각과 다른 사람을 비난할 이유도 없고, 설득시킬 자격도 없다. 어느 시대든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들이 민심을 격동시켜 체제를 바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몫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국민들 덕이다. 앞서 말한 GTX를 만든 분들이 그들 중 하나다.
목소리 크고 간교한 말로 국민을 선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출퇴근길에 고생하며 피곤한 몸으로 가족 걱정하는 사람들이 진짜다.
오죽하면 공자도 “교묘하고 화려한 말솜씨와 낯빛을 좋게 꾸미는 자들 중 정말로 어진 사람은 드물다 (巧言令色 鮮矣仁)”고 말했을까? 말 잘하고 낯 두꺼운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불행히도 세상은 염량세태였고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들이 농단했다.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어쩌면 이게 세상 이치이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바꿔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과 잘못 없다고 잘하고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모두 분별력 없는 지도자와 지도층(‘지도’라는 말조차도 부끄럽지만)의 잘못이다. 국민을 선동하고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드는 것, 즉 스스로 멸망할 작태를 자행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최고 엘리트였던 윤치호(1865~1945)는 자신의 영문 일기에서 망국 군주 고종에 대해 이렇게 썼다.
“황제는 오후 2시쯤 기상한다. 용변을 보고, 밥을 먹고, 점쟁이 등과 잡담을 하고 나면 오후 6시가 된다... 황제는 파렴치하고 거지 같은 허영심 덩어리다.”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의 은덕을 입은 윤치호도 이런 말을 했는데 일반 백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어떻게 이룩한 나라인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AI기자 요약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