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도 성격이 있다. 마치 사람의 MBTI처럼 도시 역시 고유한 성향과 특징을 지니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율한다. 만약 성수동이 MBTI 검사를 받는다면 어떤 유형일까? 아마도 ESTP(모험가)일 것이다. 과감하고 실용적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성격. 성수동의 도시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키워드는 바로 ‘디자인’이다.
성수동을 걸으면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1970년대 붉은 벽돌 공장과 2024년 현재의 세련된 카페가 한 블록 안에 공존하는 풍경.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깊이 있는 디자인 철학의 결과다. 성수동의 도시재생사업은 ‘보존과 재생, 공유’라는 패러다임 위에서 ‘성수다움’을 지키며 진행되었다.
교육적 관점에서 성수동은 도시 디자인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대림창고가 1970년 정미소에서 1990년 부자재창고를 거쳐 2011년 문화공간으로, 그리고 현재의 레스토랑 겸 갤러리로 변신한 과정은 ‘적응적 재사용(Adaptive Reuse)’의 완벽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는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현장 학습장이 되고 있다.
성수동의 디자인 혁신은 단순히 미적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도시제조허브는 전통적인 제조업 공간의 혁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과거 도심형 공장이 효율적 생산만을 강조했다면, 이곳은 제작-기획-유통-마케팅-소비가 하나의 공간에서 통합적으로 진행되는 ‘상품 체인의 지리(geography of commodity chain)’를 압축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제조업 모델을 제시한다. 성수동의 수제화 산업이 과거 하청업체의 종속성을 벗어나 직접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 브랜딩’ 전략은, 지역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도시 정체성을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성수동 디자인의 핵심은 ‘콘트라스트(대조)’에 있다. 거친 콘크리트와 세련된 유리, 낡은 벽돌과 현대적 스틸 프레임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미학이 탄생한다. 필로미 빌딩의 아치형 필로티 구조는 성수동 고가 구조물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각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도, 새로운 가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코너50의 계단식 발코니는 단조로울 수 있는 오피스 건물을 역동적인 도시 조각품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단순히 기능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도시 경관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디자인 요소로 작용한다. 성수동의 디자인 언어는 ‘완벽한 조화’보다는 ‘창조적 긴장’을 추구한다.
성수동이 제시하는 도시 디자인 모델은 미래 스마트시티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기존 인프라를 파괴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재활용하는 접근 방식은 탄소 중립 시대의 도시 설계 철학과 일치한다. 팩토리얼 성수의 ‘테크 레디 빌딩’ 개념은 삼성전자의 IoT 기술과 현대차의 로봇 기술을 통합한 3세대 오피스 모델을 선보인다.
하지만 성수동의 진정한 혁신은 기술 자체보다는 ‘인간 중심적 접근’에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조례 제정, 지역 상생협약 체결 등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기에 기술적 혁신이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성수동의 성공은 ‘도시의 콘셉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DNA를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수동의 콘셉트는 ‘거친 매력(Rough Charm)’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 오히려 진정성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이는 과도한 개발로 획일화된 한국의 도시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모든 도시가 강남이나 송도처럼 완벽하게 계획된 공간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각 지역의 고유한 맥락과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기능을 접목하는 ‘맥락적 디자인(Contextual Design)’ 접근법이 더욱 매력적인 도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ESTP 성격의 성수동은 앞으로도 변화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무분별한 개발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진화가 될 것이다. 성수동이 보여준 ‘거칠게 리디자인된 도시’ 모델은 전 세계 도시들이 참고할 만한 소중한 사례가 되었다.
도시의 얼굴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다. 성수동의 거친 매력은 완벽함보다는 진정성을, 계획된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스러운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시의 콘셉트’가 아닐까.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도시들도 성수동처럼 고유한 성격과 철학을 가진,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장기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도시미학 지도교수



AI기자 요약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