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여름은 유난히 길고, 불규칙했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올 여름은 9월까지도 열대야와 폭염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선 기록적인 폭우와 가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를 스쳐 지나가던 태풍마저 예년과 다른 경로를 택하면서 ‘익숙한 계절의 질서’는 무너졌다. 이 현상은 단순한 일시적 변덕이 아닌 지구적 차원의 이상기후로 해석해야 한다.
과거 한국의 여름은 대체로 6월 장마, 7월부터 9월까지 폭염과 태풍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2023년부터 이 전형적 패턴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2025년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한반도를 장기간 덮었고, 고온다습한 공기가 정체하면서 여름이 길어졌다.
예상치 못한 여름이 길어지면서 경기도내 온열환자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이달 28일까지 도내 누적 온열질환자 수는 모두 939명으로 역대 최고 무더위를 기록한 지난 2018년의 전체 온열질환자 937명을 넘어섰다.
온열로 인한 사망자는 파주에서 2명, 성남·화성·이천 각각 1명으로 총 5명으로, 일 최고기온이 33.3도 이상이면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온열질환자가 약 51명 발생하는 등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이 대기 대순환을 교란시키고, 계절 전환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엘니뇨와 라니냐 같은 해양-대기 상호작용이 과거보다 강하고 불규칙하게 나타나며 계절 지속성을 왜곡한다고 말하고 있다.
올여름 경기 북부와 충청권 등 중부지역과 호남권 경남권 등 남부지역은 한 달 치 비가 하루에 쏟아지는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강릉 등 강원 일부 지역은 극한 가뭄 속에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며 식수원까지 위협하고 있다. 강릉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물을 더 공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것인데 결국 정부는 지난 30일 강릉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자연재난으로는 처음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제트기류의 정체현상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과거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제트기류가 뚜렷했지만, 지금은 ‘고리 모양’으로 뒤틀려 한 지역은 장마전선이 오래 머물고 다른 지역은 고기압이 눌러 비구름이 차단된다는 것이다. 결국 한반도 안에서도 ‘홍수와 가뭄의 공존’이라는 모순된 기후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게 된 것이다.
태풍이 한반도를 비껴가는 최근의 현상도 심상치 않다. 통상 7월~9월이면 한반도는 23개의 태풍 영향을 받았으나, 2024년과 2025년은 태풍이 일본이나 중국 동부로 치우쳐 지나갔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 경로 변화다. 고기압이 평년보다 동쪽으로 치우치면서 태풍이 한반도 대신 일본 열도 쪽으로 북상했다. 둘째, 중국 내륙의 고온건조한 공기가 태풍 진로를 차단한 점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태풍의 직접 피해는 줄었지만, 오히려 태풍이 남긴 수증기가 폭우로 변하거나 가뭄 해소 기회를 놓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상기후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각 지자체는 기존 ‘평년 기상 패턴’을 기준으로 한 재난 대비 매뉴얼로는 더 이상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시지역은 홍수에 대비해 빗물저류시설, 침수 예·경보 시스템, 하천 제방 보강 등 스마트 홍수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농업지역은 가뭄에 대비해 지하수 관리, 물 절약형 관개시스템 도입, 가뭄저항 품종 보급 등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태풍의 경로 예측 불확실성을 감안해, 전력·통신 인프라 보강과 폭염쉼터 확충 등 복합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2025년의 여름은 한반도가 이미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태풍이 사라진 대신 국지적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발생하고, 여름은 끝없이 이어진다.
지자체들은 ‘이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재난대응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속에서 시민의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길은, 선제적 대비와 지역 맞춤형 기후 적응 전략뿐이다.
김호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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