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민선단체장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역사를 30년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48년 제헌헌법에 근거해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 시행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민선단체장 30주년을 더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단체장 위주로 이루어지는 ‘강 시장 약 의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강력한 지위와 권한을 갖고 있는 자치단체장의 권한을 적절하게 견제함으로써 주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지위와 권한 확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직접적인 주민자치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이에 2022년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주민투표·주민소환·주민조례발안 등 직접 참여 제도를 손질하고, 주민참여권 강화·주민자치 원리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자치는 여전히 ‘행정 주도’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민의 참여가 제도에 머물고, 생활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낮다. 바로 이 틈새를 메워 온 주체가 지역 NGO다. 이들의 존재가 없었다면, 주민자치라는 말은 껍데기에 그쳤을 것이다.
이러한 주민자치 현장에서 중요한 참여자인 지역 NGO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 참여를 조직·교육·동원하는 촉진자(enabler)다. 지역NGO는 주민참여예산학교, 주민총회, 타운홀 미팅을 기획하며 주민들이 제도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주민–지자체–의회–전문가를 잇는 중개자(broker)다. 지방정부와 주민 사이, 의회와 전문가 사이의 언어와 이해를 번역하고 조율한다.
셋째, 지방정부의 정책 실행을 살피고 공공성·책임성을 요구하는 감시자(watchdog)다. 시민옴부즈만 제도나 주민감사 청구 과정에서 지역NGO는 정책 집행의 책임성을 높이는 견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NGO의 역할을 제약하는 여러 한계가 있다. 즉, 대부분의 지역NGO는 재정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지속적인 운영과 핵심역량 축적을 어렵게 한다. 또한 참여가 특정 네트워크나 소수의 활동가에 편중되며 ‘엘리트 포획’ 우려가 반복되고 있고, 이에 따라 NGO 내부의 전문성이 균질하지 않아 참여 성과의 질적 편차가 큰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주민자치가 실질적으로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지역NGO가 자생력을 강화해 가야 한다. 지역NGO가 자생력을 갖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세 축의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제도적 지원이다. 지방자치법과 지방재정법에 담긴 주민참여 제도를 의제 발굴–예산 반영–집행–평가까지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묶어야 한다. 주민발안으로 시작한 의제가 참여예산으로 자금을 받고, 지역NGO와 협업해 집행되며, 주민감사와 데이터 공개로 마무리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재정 지원이다. 공모 위주의 단발성 지원에서 벗어나 다년도 펀딩을 확대함으로써, 운영비와 상근인력, 백오피스 역량을 보강할 수 있어야 지역NGO가 진정한 파트너로 설 수 있다.
셋째, 내부 역량 강화다. 지역NGO 스스로도 거버넌스 윤리, 재무 투명성, 데이터 기반 성과관리,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
자치시대의 지역NGO는 행정동원적·정부협력적 활동에 앞서, 자생조직적 활동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자율성과 독립성이 뒷받침되어야만 행정과의 협력도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역NGO는 지역주민의 삶에 뿌리내린 생활운동 그리고 작지만 강한 주민자치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역NGO가 장기적으로 생명력을 확보하는 길은 주민들의 일상과 호흡하는 생활정치운동을 만드는 데 있다. 이는 곧 자치시대의 진정한 시민사회의 힘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바로 지금이 주민자치의 현장, 바로 그 한복판에서 지역NGO가 다시 한 번 자기 역할을 묻고, 또 변화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장인봉 신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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