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며, 혹은 광활한 자연 앞에서 “이 모든 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물음은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이 질문은 과학적 사실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탐구의 영역이며, 세상의 기원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본질적 탐구의 표현이다. 이 심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철학, 과학, 그리고 신학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각기 다른 답을 모색해 왔다.

철학적 관점에서 세상의 기원을 논할 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이다. 이 논증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과 사건이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는 행위에는 ‘나’라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는 또 다른 원인에 의해 존재한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우연적 존재(contingent being)는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한 원인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우연적 존재들의 총합인 우주 역시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한 어떤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적 귀결에 이른다. 철학은 이 원인의 사슬이 무한히 이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원인의 사슬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애초에 그 사슬을 시작하게 한 최초의 원인(First Cause)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필연적 존재(necessary being)가 있어야 하며, 철학은 이 필연적 존재를 우주의 기원으로 제시한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매우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세상이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의 가장 강력한 답은 바로 빅뱅 이론(Big Bang Theory)이다. 빅뱅 이론은 약 138억 년 전,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한 점에 응축된 특이점(Singularity)에서 출발하여 폭발적인 팽창을 시작하면서 우주가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은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의 발견이나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의 법칙과 같은 여러 과학적 증거들로 뒷받침된다. 빅뱅 이론은 우주의 나이, 구조, 그리고 물리 법칙의 기원에 대해 놀라운 예측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 역시 한계에 부딪친다. 빅뱅 이론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하지만, 특이점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혹은 왜 이러한 물리 법칙들이 생겨났는지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과학은 ‘무엇이 있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철학, 과학, 신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세상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은 ‘어떻게(How)’ 세상이 시작되었는지를 묻고, 철학은 ‘왜(Why)’ 세상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신학은 ‘누가(Who)’ 세상을 창조했고 ‘무엇을 위한(For what purpose)’ 세상인지를 묻는다. 이 세 분야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과학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물리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며, 우리에게 우주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철학은 그 과학적 사실들이 함의하는 존재론적, 윤리적 의미를 탐구하며 인간의 이성을 확장한다.

그리고 신학은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 그리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논하며 우리의 영적 갈망에 답한다. 과학의 발견은 철학적, 신학적 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며, 반대로 철학과 신학의 질문은 과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탐구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우주를 조명함으로써, 우리는 단 하나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었던 풍부하고 다차원적인 세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철학, 과학, 신학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데 있어 서로를 배제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다. 과학이 밝혀내는 우주의 신비는 철학적 사고의 깊이를 더하고, 존재의 근원에 대한 신학적 믿음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의 기원은 단순히 ‘어떻게’ 혹은 ‘왜’라는 단편적인 질문으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왜’라는 총체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주제다.

과학과 철학, 신학이 각자의 진리 탐구 방식을 존중하며 대화할 때, 우리는 세상의 기원에 대한 가장 풍부하고 조화로운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성과 믿음, 경험과 사유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장 포괄적인 탐구의 길이기 때문이다.

차종관 세움교회 담임목사, 전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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