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한 기준과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한 제언
◇정당한 지휘와 인격침해의 분기점, 품위 있는 근무환경을 위한 기본 원칙
“이런 상황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을까요?”
공인노무사로 기업 경영자들을 만나다 보면 유독 자주 접하게 되는 질문이다. 업무상 필요한 질책과 인격침해의 경계, 정당한 업무 지시와 과도한 요구의 구분, 심지어 직원 간 갈등 상황에 대한 회사의 대응 방법까지. 예전 같았으면 ‘직장이란 곳이 원래 그런 거지’라며 넘어갔을 상황들이, 이제는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해행위’로 인식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2019년 7월 관련 법규가 시행되면서 우리나라는 성숙한 근로환경을 향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경영자들이 직무상 요구되는 명령과 인간성을 훼손하는 언행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 판별 기준은 점차 명료해지고 있다.
◇어떤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가?
관련 법령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전부 만족하는 경우로 규정한다. ①직장 내 지위 또는 관계상 우월함을 활용할 것 ②업무상 정당한 범주를 초과할 것 ③이로써 타 근로자에게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초래하거나 근로환경을 저하시킬 것 등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관계상 우월함’이다. 단지 상급자-하급자와 같은 위계적 구도뿐 아니라, 연령, 학벌, 직무 숙련도, 나아가 다수 대 소수의 구도처럼 동등한 위치에서도 가해가 성립될 수 있다. 특정인을 의도적으로 고립시키고 업무에서 체계적으로 소외시키는 ‘집단적 배제’가 전형적인 사례다.
‘업무상 정당한 범주’를 일탈하는 행위 또한 욕설이나 물리적 폭력 같은 극심한 경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근래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더욱 광범위한 행태를 가해로 판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하거나, 타당한 사유 없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차단하는 행위, 반대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중한 업무를 할당하거나 아예 업무를 배정하지 않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퇴근 이후나 휴일에 메신저를 통해 지나치게 업무를 지시하거나 사사로운 질의로 부담을 주는 ‘온라인 괴롭힘’ 역시 새로운 유형으로 부각되고 있다.
◇경영자가 알아야 할 법적 책임과 대응 절차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업주는 즉시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조사 기간 동안 피해신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사 결과 가해 사실이 확인되면 가해행위자에게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더욱이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점도 존재한다. 적법한 업무 평가나 지휘까지 ‘가해’로 오해하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 불만 표출이나 동료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로 신고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조직 내 불필요한 오해와 대립을 촉발하고, 경영자에게는 신고의 진위를 확인하고 공정하게 조사해야 하는 책무를 가중시킨다.
◇‘사전 방지’가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제재나 처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구성원을 존중하는 풍토가 곧 조직의 생산성과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특성상 인력 운영에 제약이 있고, 가족적 분위기로 인해 공식적 절차가 생략되기 쉽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기적인 예방 교육을 통해 전체 구성원에게 가해의 판별 기준과 사내 처리 프로세스를 명확히 전달하고, 무엇보다 경영자가 솔선수범하여 수평적이고 투명한 소통 문화를 조성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신고 절차, 조사 방법, 징계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신고 접수 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는 균형 잡힌 자세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괴롭힘 없는 직장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경영자가 먼저 나서서 서로를 대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풍토를 조성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생산적이고 건강한 조직문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윤수 노무법인 희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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