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협의를 거쳐 지역 곳곳에 설치해 온 교통안전표지판이 오히려 도로교통법 위반 시설에 해당하면서 대거 철거되거나 정비될 처지에 놓였다.
기존 시설물에 과도한 정보가 담겨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경찰의 판단에서인데, 돌연 이런 결정이 내려지면서 현장의 혼란과 예산 낭비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철거에 포함된 전국 유사 교통안전시설물은 총 74개, 정비 대상물은 547개에 달한다.
경찰청은 지난 7월 교통안전심의위원회를 열고 LED 전광판형 교통안전표지 보조장치의 표준규격 제정을 위한 심의를 열었으나 불채택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교통 표지판에 차량 속도나 날씨, CCTV 등 과도한 정보가 실린 경우 운전자의 시선을 분산시켜 사고 위험을 유발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기존에 설치된 LED 교통표지판 중 주의·규제·지시 등의 문구나 그림이 담겨 있는 경우 도로교통법상 표준규격 위배 사항으로 바뀌었다.
일례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당신의 현재 속도’라는 문구와 함께 차량의 실시간 주행 속도를 표시하는 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운전자가 이에 시선을 뺏겨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이번 경찰 조치로 경기 지역에서는 유사 교통안전시설, 전광판형 시설 등 교통안전시설물 198개가 정비에 들어갔고, 8개가 철거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규모이다 보니 시설물 정비 예산을 맡은 지자체의 부담이 커진 데다 향후 교통 표지판 설치 계획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경기도는 지난 8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위배되는 기존 교통안전시설에 대한 철거 및 정비를 독려하는 공문을 31개 시·군에 발송했다.
하지만 도로 사각지대를 비추는 CCTV 표지판 등 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됐던 시설물까지 전면 철거 대상에 포함되면서 일부 지자체가 혼란을 겪고 있다. 실시간 속도 표지판을 철거해야 함에도 당장 예산 확보가 어려워 임시로 간판을 시트지로 가려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CCTV 표지판을 설치하려 했으나, 경찰 공문을 토대로 현행법상 표준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새롭게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며 “경찰 허가가 난 표지판을 이제와서 정비해야 하다 보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전체 철거는 어려워 여건이 되는 한 정비로 대체하고 있다”며 “현행법 규정에 맞게 표지판을 바꾸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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