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이 사망하고 94년 후에 공자가 태어났다. 두 사람 나이 차이는 약 175년이다. 지금으로 보면 공자에게 있어서 관중은 조선 철종 시대 인물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관중은 인자(仁者)가 아닌 듯합니다. 주군인 공자 규(糾)를 좇아 죽지 못하고 오히려 적으로 있던 제환공을 섬겼으니 말입니다”라고 공자에게 말한다.

공자는 잘라 말했다.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단속하고, 일거에 천하를 바로잡는 위업을 이뤘다. 중원의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다.” 이어 결론을 내린다. “어찌 그의 행보를 필부가 작은 절개를 위해 목숨을 끊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수신제가만 강조하던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이상할지 모르지만 논어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논어를 잘 읽어보면 공자는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송나라 주희(보통 주자라고 부름)에 의해 ‘치국평천하’는 없어지고 ‘수신제가’만을 강조한 도덕주의자로 바뀐 것이다.

공자는 벼슬을 얻는 데 실패한 사람이지만 항상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 했다. 그런 공자가 현실 정치의 승리자인 관중을 높이 평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관자라고 불리는 관중은 경세제민과 부국강병의 대명사다.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 경세가였다.

관중은 ‘백성은 곳간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영욕(榮辱)을 알게 된다’고 했다. 관중이 살던 때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전부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념이며 사상이며 정의는 다 부질없다.

예의범절만 강조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공자도 관중과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인구가 많은 위나라를 지날 때 제자 염구가 묻는다. “이미 이렇게 인구가 많으니 또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 공자는 “부유하게 해줘야지”라고 말한다. 민생이 최우선이라는 뜻이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데 있었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공자의 본뜻을 뭉개고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니,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니,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등을 떠들다가 백성의 삶은 피폐하고 나라는 망가졌다. 주자와 성리학에 함몰된 조선은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으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방향타를 바꾼 후 오늘의 번영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2025년은 난세다. 미래의 희망은 보이지 않고 내우외환의 위기다. 이것이 나라의 운명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동안 국민의 노력이 너무 아깝다. 지금 우리 현실은 너무 암담하고 자강(自强)의 길은 멀기만 하다. 가짜 보수, 가짜 진보가 판치고 국민이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고, 평생을 일할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다. 이런데도 양대 노총은 65세 정년연장의 연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가 없는데 장년층 고용을 늘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일하는 사람 따로, 발목 잡는 사람 따로다. 얼마 전 방한한 트럼프와 젠슨 황이 한국 기업과 우리의 조선업을 또 치켜세웠다.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이건희를 비롯한 과거의 선각자 덕을 수십 년 후에 보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그룹, LG, 한화오션 등이 현대판 관중(管仲)이다. 그들이 난세의 영웅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트럼프에게 맥없이 당했을 것이다. 지금을 굳이 난세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회를 지탱하던 기존의 질서와 규범이 허물어져 사람들의 삶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난세의 평가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나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가치관이 흔들리거나 백성의 삶이 피폐해진다. 둘째, 꿈과 희망, 믿음이 사라진다. 셋째, 진영 간의 극단적인 투쟁을 중재할 세력이 없다. 넷째, 영웅의 출현을 기대한다. 난세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역사가 증명하듯 난세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단칼에 난세를 해결하는 영웅을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전략과 실천, 소통과 협력, 견제와 감시, 진실 감지 능력 향상,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학습과 혁신이 어우러질 때 난세를 극복할 수 있다. 그 일은 분노하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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