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고향 대신 화생행궁 산책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 안주 삼아
켜켜이 쌓인 도시의 추억 재발견

고향이 아닌 수원에서 추석을 보낸 시민기자와 지인들. 배재호 시민기자
고향이 아닌 수원에서 추석을 보낸 시민기자와 지인들. 배재호 시민기자

수원의 추석 연휴 밤은 잠잠하면서도 깊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떠난 뒤, 도시의 골목은 잠시 숨을 고른다. 오래된 가게 앞에는 지나간 계절의 냄새와 손때 묻은 반찬 기름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추석, 수원의 근대유산이 있는 골목과 화성행궁 주변을 따라 걷다 보니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그곳이 어느새 내 고향처럼 다가왔던 기억과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장안문 일대에서 열린 수원미디어아트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날까지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타지에서 이사 와 25년 넘게 수원과 경기 지역에서 살았다. 올해 추석에는 수원이 고향이 아닌 분들과 함께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다른 지역 출신 시민들도 추석에 가족을 만나는 대신 수원의 밤을 즐겼다. 추석 마지막 날, 장안문 근처 어느 포차에서 수원 갈비뿐 아니라 유명한 통닭, 축제 분위기가 더해진 주변 가게들의 음식들로 기본 이상을 맛보았다.

지역 상인 A씨(50대, 음식점 운영)는 “추석이면 손님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던 때가 생각나요. 요즘은 떠나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은 가게에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 나누는 게 큰 위안이에요.”라고 말했다. 노포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오래된 레시피를 설명하며 “된장, 젓갈, 간장 같은 깊은 발효의 맛이 제대로 나야 진짜 집밥이지요.”라며 미소를 보였다.

고향 품은 도시, 수원의 화성행궁 일대. 배재호 시민기자
고향 품은 도시, 수원의 화성행궁 일대. 배재호 시민기자

요즘 수원 신풍동과 장안동 일대는 두드러지게 변화하고 있다. 추석 연휴로 한산해진 골목은 휴무한 상점들 덕분에 잠시 멈춘 듯하면서도, ‘재발견’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젊은 방문객들은 오래된 간판, 가게 안 구석구석 남은 흔적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소규모 카페 몇 곳은 연휴에도 문을 열어, 빈 골목에 작지만 따뜻한 불빛을 밝힌다. 이런 풍경은 누군가에겐 고향의 빈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발견의 시작을 보여준다.

수원의 추석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맛으로 채워진다. 전통주를 파는 가게나 지역 특산물을 새롭게 만나는 일은 단순히 그리움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이 도시만의 기억을 잇는 일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이 아니더라도 수원의 오래된 골목을 거닐며, 노포에서의 인터뷰와 반찬 레시피가 더해진 이 이야기는 수원이 품어준 시간들이며,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오늘 밤, 누군가의 새 출발을 배웅하며 수원은 또 한 번 사람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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