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번에 갔던 곳은 우스갯소리로 ‘경기도 다낭’이라 불리는 베트남의 다낭이었다. 비행시간도 길지 않아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쯤 다낭에 무사히 도착할 정도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게 보통이지만 다낭은 달랐다. 단 10여 분 만에 바닷가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해변으로 나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보통 바닷가 모래는 발이 푹푹 빠지기 마련인데, 다낭 해변의 모래는 특이하게도 단단하여 걷기 좋았다. 덕분에 나는 아침저녁으로 맨발 걷기를 즐겼다. 얼마나 넓고 끝없이 긴지 해변의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미케비치 해변은 지금 한창 개발의 폭풍이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해변의 모습은 곡선으로 쭉 이어져 있어야 하지만, 미케비치 해변은 큰 톱니바퀴 모양의 바뀌어가고 있었다. 호텔 같은 큰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해안 도시 주변처럼 이곳도 머지않아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급경사지가 생겨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바닷가 해변의 풍광은 주위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예전에 다낭에 다녀온 사람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다낭에서 만나는 사람 중 절반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것을 확인했다. 관광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말을 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오고 가며 스쳐 지나가는 관광버스 앞 유리에도 대부분 한글로 된 단체 이름이나 한국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간판은 오히려 서울보다 순우리말 간판이 더 많은 듯했다. 어딜 가나 우리말이 다 통하는 곳이었다.
베트남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나라는 참으로 젊고 역동적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대부분 이삼십 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어린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굣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미래의 발전된 선진국 베트남 국민의 모습을 보았다.
나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새벽 네 시쯤부터 바다에 나와 수영하고 해변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은 그룹들이 음악을 틀어 놓고 체조나 운동을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금도 눈에 선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해변을 걸으면서 몇몇 고기잡이 가족을 만났다. 새벽 시간에 두 부부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부부가 함께 긴 그물을 들고 바다 깊숙이 들어가 남편이 한쪽 끝을 잡고 펼치면 양쪽에서 잡고 육지로 끌고 나오는 방법이었다. 여인이라 그런지 그물을 끄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 나도 뛰어 들어가 함께 그물을 끌어 주었다. 이마에 땀이 배도록 힘을 썼으나 그물에 잡힌 것은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다. 어부의 얼굴에 실망감이 조금 엿보였지만, 그는 다시 그물을 챙겨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이번 그물에는 물고기가 가득 들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 해변을 걸었다.
낯선 타국에서 고향의 태풍을 만난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북한에서 이름을 붙인 ‘갈매기’ 태풍이 다낭을 덮쳤다.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나 객지에서 만나는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 같아 반갑다고, 고향의 태풍이라니 왠지 싫지만은 않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태풍이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생선을 잡았을 소쿠리배가 이제는 관광객을 태워 나르고 있었다. 그 작은 소쿠리배에 음향 장치를 설치하고, 곳곳에서 한국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아 춤을 추며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이고 상전벽해라고 하지 않던가. 생선 잡던 바다에서 그물질 대신 노래와 춤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온 바다가 노래와 흥겨운 춤판이었다.
그 노래와 춤판 속의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노래를 불렀고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어딜 가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명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변함없이 열정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도 기죽지 않고 신명 나게 떠들고 놀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잘 사는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이 다시 보이고 위대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애국심이 절로 생겨난다.
일상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떠난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객관적으로 느껴보는 것 또한 가슴 벅찬 일이다. 어디든 떠나 보자.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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