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환절기에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공기가 점점 건조해집니다. 이런 때 감기에 걸리면 단순히 며칠 앓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넘어 봄까지 잔기침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실에서도 “감기는 다 나은 것 같은데 기침이 몇 달째 계속된다”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폐와 기관지는 차고 건조한 기운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가을 감기에 걸리면 일시적으로 열이 발생하면서 폐와 기관지의 진액이 말라버립니다. 감기 자체는 좋아져도 기관지가 예민해지고, 마른 기침이 오래 남는 것이지요. 여기에 만성피로나 평소 기력이 약한 분들의 경우, 신장에서 기운을 공급받지 못해 ‘신수(腎水)’가 고갈되면서 폐의 진액도 함께 부족해집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폐음부족(肺陰不足)’이라 부르며, 가을철 잔기침이 쉽게 그치지 않는 원인으로 설명합니다.

동의보감에는 가을 건강 관리에 대해 “가을은 서늘하고 건조하므로 조(燥)가 폐를 상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따라서 가을에는 폐를 적셔주는 음식과 습관이 중요합니다. 실내 공기를 너무 건조하지 않게 유지하고, 차갑고 매운 음식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배나 도라지, 은행처럼 폐를 윤택하게 해주는 음식은 도움이 됩니다. 차를 마실 때도 따뜻한 유자차, 꿀차, 도라지차처럼 기관지를 보습해주는 음료가 권장됩니다.

적절한 휴식, 충분한 수분, 속을 덥히는 음식, 그리고 체질에 맞는 한방 치료가 함께한다면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고, 봄까지 이어지는 잔기침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가을 환절기에 유독 배가 자주 아프고 화장실을 찾게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름 내내 더위를 견디느라 우리 몸속에는 습기가 쌓여 있는데, 가을이 되면 이 습기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장이 예민해지고 대변이 풀어지는 일이 잦아집니다.

특히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가진 분들은 이런 환절기에 증상이 심해집니다. 스트레스만 받아도 배가 아픈데, 계절 변화까지 겹치면 장이 더 불안정해져 복통이나 잦은 설사, 갑작스러운 배변 신호가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가을철 배탈,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찬 음식과 음료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스크림, 얼음물, 차가운 커피는 순간은 시원해도 속을 더 차갑게 만들어 장의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대신 따뜻한 차나 국물 요리를 곁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생강차나 대추차처럼 속을 덥히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음식이 도움이 됩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휴식도 기본입니다. 식사를 거르거나 늦은 밤 과식은 장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수면 부족은 자율신경계를 흔들어 대장을 더 예민하게 합니다. 여기에 가벼운 산책이나 스트레칭 같은 일상 운동은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점은, 가을철 배탈이 단순한 일시적 증상일 수도 있지만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된다면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만성질환일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찬바람 불면 꼭 배탈 난다”는 말이 매년 반복된다면 생활 습관 관리와 함께 전문가의 진료를 통해 체질에 맞는 조언과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환절기는 몸의 균형이 흔들리기 쉬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작은 습관만 바꿔도 속은 훨씬 편안해지고 가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정진용 경희화인한의원 원장·경기도한의사회 홍보정보통신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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