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다음 주 일요일 오후, 출판기념회를 엽니다. 꼭 오셔서 덕담 한 말씀 해주세요.”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아닙니다. 절대 아니고요. 글 쓰는 형님 축하를 받고 싶어 그럽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끝자락에 너른 고을(廣州)에서도 깡촌이었던 퇴촌출신 한 후배가 출판기념회를 갖는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정말 의외였고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25년 전, 같은 고향이고 해병대 출신인 학교선배가 단 3표 차이로 국회의원이 되자, 해병대 후배인 그를 수행비서로 발탁했습니다. 한 순간에 의원비서관이 된 그는 뚝심 있게 수행비서 역할을 해냈지요. 저와는 별 인연이 없던 그와 마주치고 새 인연을 맺게 된 연유입니다. 그가 고향 후배인데다 아내와 동창이라는 말을 하면서 스스럼없이 형님이라고 부르며 다가와서 부담 없이 지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재선에 성공했던 선배가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게 되자 그 역시 직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꽃집사장, 보험설계사 등 다양한 일을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지요. 한 덩치 하는 거구에 해병대 출신으로 터프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가 곤지암 장심리 마을 산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도 간단치 않은 일인데 트럭운전사가 되었으니 놀라울 따름이었지요. 그러던 그가 2년 전 봄, MBN-TV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거처엔 골동품과 상장들이 즐비했고 제법 화려했던 지난날이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조명되었지요.
1989년 7월 리비아에서 대한항공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근로자를 태운 버스를 운전하던 그가 추락장면을 목격했지요. 그는 탑승객 전원을 하차시키고 버스를 몰고 사고지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사고 현장엔 비행기 밖으로 튕겨져 나온 부상자들과 흩어진 비행기 잔해가 뒤엉긴 극한상황이었지요. 그는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는 기체로 들어가 탑승객들을 구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비규환 속에서 47명을 태우고 전속력으로 달려 병원으로 후송했지요. 그 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으며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훗날, 사막에서 돌아온 그가 해병대 선배인 국회의원 수행비서가 된 거지요. 실직 후, 그는 열개도 넘는 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곤 시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한 순간에 삶이 피폐해지기 시작했지요. 그때 산 약초를 알려준 어머니, 한옥 짓는 법을 알려준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속에 늘 품고 있던 산, 그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변곡점이었지요. 트럭운전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산나물과 약초를 캐며 진정한 안식처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가 이순(耳順)을 지나 자연의 품속에서 쌓은 깊고 농익은 내공으로 일상을 다듬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엄청난 짐을 싣고 방방곡곡을 누비며 달리는 대형트럭보다 훨씬 장엄한 산처럼 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늦가을 향기가 더욱 짙었던 건 우직한 그의 향기가 더해졌기 때문이겠지요. 집에 돌아와 단숨에 책을 읽었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질곡의 삶을 녹여낸 글이 훌륭했습니다. 자연인으로 살며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겠지요. 거칠고 힘겨운 삶속에서 꾸밈없이 쓴 글이 감동을 넘어 경이로웠습니다. 약삭빠른 머리가 아닌, 투박한 가슴으로 순수하게 사는 인생철학이 묵직하게 스며든 거지요.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별똥별이 쏟아졌지요. 그의 글 향기 가득한 늦가을이 참 평온했습니다.
비우고 내려놓고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트럭운전석을 책상으로, 길 위에서 느낀 것을 그대로 기록한 책, 그의 책은 단순한 책 한 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의미 있고 값진 가을걷이를 했다는 생각이지요. 그의 겨울은 따뜻하고 넉넉한 웃음꽃이 가득 피어날 것입니다.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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