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치가 심박수를 측정하고, 앱이 칼로리를 계산하며, AI가 질병을 예측하는 시대다. 2024년 기준, 식약처 인증 의료 AI는 305건, 미국 FDA 승인은 950건에 달한다. 건강관리가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시대다.

그러나 기술의 화려한 진보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면이 있다.

AI는 걸음 수, 혈압, 수면 시간을 정확히 측정한다. 하지만 친구와의 웃음, 산책길에서 느낀 평화, 가족과의 저녁 식사가 주는 행복은 어떤가. 진정한 웰빙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질적 측면에서 비롯된다. WHO가 정의한 건강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의 조화로운 상태’다. 그러나 오늘날 AI 건강관리는 측정 가능한 지표에만 집중하면서 건강의 맥락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AI가 진단과 예측에서 전문가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성능을 보이면서, 의사-환자 관계와 의료 전문가의 역할은 근본적 재정립이 요구된다. AI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공감’, ‘맥락적 이해’, ‘윤리적 판단’, ‘환자의 삶의 맥락을 고려한 종합적 치료 계획’이다. 예를 들어 AI가 특정 약물을 추천하더라도, 환자의 경제적 상황, 가족 관계, 문화적 배경, 개인적 가치관을 고려한 최종 결정은 인간 전문가의 몫이다.

또 다른 문제는 ‘디지털 건강염려증’이다. 웨어러블 기기가 수집한 데이터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정상 범위의 생리적 변화에도 과민 반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AI 체형관리 앱이 외모 집착과 섭식장애를 악화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소셜미디어의 ‘AI 생성 완벽한 몸’ 이미지는 비현실적 신체 기준을 확산시키며, 과도한 목표 설정은 정신적 탈진을 초래한다. 고령층 헬스앱 이용률은 저조하고 피부질환 진단 AI는 특정 인종에 편향돼 있고, 체중관리 앱은 젊은 여성 중심으로 설계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AI 건강관리 서비스에서 사용자가 생성한 건강 데이터의 실질적 소유권과 통제권은 플랫폼 기업에 있다. 아직 건강 데이터의 수집, 저장, 활용, 이전, 삭제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건강 데이터가 보험사, 고용주, 정부 기관에 제공될 경우 차별과 불이익의 근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고, 필요 시 특정 의료기관이나 연구기관에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헬스 리터러시’를 재정립해야 한다. 단순히 앱 사용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맹목적 신뢰를 경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알고리즘이 왜 그런 결과를 냈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건강 주체성이다.

공공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간 기업 주도의 서비스는 수익성을 추구하며 고소득층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보건소와 복지관을 거점으로 무상 AI 건강 상담 서비스를 확대하고, 농어촌 지역에는 이동형 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함께 걷고, 텃밭을 가꾸며, 세대 간 건강 지식을 나누는 ‘아날로그 웰니스’와 AI 기술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웰니스 생태계’가 필요하다. 기술은 도구일 뿐, 건강의 주체는 언제나 인간과 공동체여야 한다. AI가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는 시대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더 인간다운 건강을 추구하는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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