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필수의료는 더 이상 전문가 집단 내부의 논쟁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다. 최근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은 사례는 우리 의료 안전망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국민적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 국민 다수가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해야 할 의료”로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신속 대응이 필요한 중증의료를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에서조차 적절한 치료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어떤 제도도 국민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번 조사 결과는 국민의 인식이 매우 분명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판단이다. ‘필수의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응답자가 건강보험 보장 영역 전체를 떠올렸지만, 실제 국가의 우선적 책무로 생각하는 분야를 묻자 압도적 다수가 중증 응급의료를 선택했다. 암·희귀난치 질환, 분만·신생아, 감염병 대응 등도 뒤를 이으며 필수의료 전반에 대한 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94.9%에 달했다. 이는 의료체계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불신이 축적된 결과이며, 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구진이 지적했듯 필수의료 개념은 아직 확립돼 있지 않다.
임상적 기준으로 보면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응급·중증만 필수의료로 한정되지만 그럴 경우 암이나 희귀질환, 감염병처럼 장기적 관리가 필요한 영역은 배제되는 모순이 생긴다. 반대로 정책적·규범적 관점에서 정의하면 범위가 넓어지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갈등이 심화될 여지가 커진다. 결국 필수의료는 학술적 정의보다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한 개념이며, 국가가 어떤 의료를 우선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필수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재정 투입이나 인력 확충이라는 일차원적 대응이 아니다. 필수의료의 범위와 우선순위를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조율, 정부와 의료계의 역할 재정립,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구조적 개편 등 종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응급·중증의료 체계는 24시간 작동해야 하는 공공 인프라에 가깝다.
이를 시장 논리나 개별 의료기관의 자율성에 맡기면 필연적으로 공백이 발생한다. 국가가 보다 명확한 기준과 책임을 지고, 의료진이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복지정책도 온전히 기능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개념의 혼란을 방치한 채 정책을 추진하면 또 다른 갈등과 불신을 불러올 뿐이다. 명확한 정의, 충분한 소통, 지속 가능한 구조 마련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제인 셈이다.지금부터라도 국외 문헌에 나타난 필수의료(essential health care)의 개념과 범위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보편적 건강보장 달성을 위해 보장돼야 하는 필수적 의료서비스‘를 의미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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