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재판은 언제 끝나는가요? 어머니가 살던 집을 재판 결과에 따라 정리해야 하는데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꾸 독촉이 와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러다가 집이 넘어가도 자식들이 해결할 수가 없어 난감하기만 하네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형제·자매들 사이에 재산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던 당사자가 답답함을 토로한다.
어머니는 살고 있던 집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연세가 드심에 따라서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은행에 주택연금상품에 가입하여 매달 생활비를 충당해 왔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장례를 치르자마자 장남은 차남과 세 명의 딸들에게 차용증서 인증서를 제시하면서 어머니의 차용금 중 상속지분에 상당하는 돈을 갚아 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동생들은 장남의 요구를 납득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생전에 위와 같은 금전 차용사실을 이야기한 바도 없었고, 어머니가 장남으로부터 그렇게 큰 돈을 빌릴 필요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동생들은 장남이 어머니의 인감도장을 임의로 사용하여 위임장에 날인하고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공증사무실에 혼자 방문하여 차용증서를 인증받아 두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위 서류를 동생들에게 제시하여 그 채무상속을 빌미로 하여 어머니의 유산을 독식하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결국 서로의 갈등은 법정싸움으로 비화되었고, 동생들이 어머니 명의의 차용증서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법리적 공방이 계속되어 1심, 2심을 거쳐 3심에 이르렀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흘러 금융기관의 독촉에도 한계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3심 재판 결과는 나오지 않고 계속 계류 중이다. 위 당사자는 재판이 지연되어 적시에 자식들 간의 분쟁을 종식시킬 수 없어 어머니의 유산정리를 적정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사법부를 원망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 외에도 실제 실무를 하다 보면 재판지연으로 인하여 법원을 탓하고 불신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반면에 재판지연으로 이득을 본 사람도 있다. 어느 국회의원은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유죄판결을 받고도 국회의원 임기 4년이 거의 경과될 즈음에야 재판이 종결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아무런 지장없이 의원생활을 거의 마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어떤 시장과 국회의원은 그 임기가 거의 종료되고 있는 시점에서야 1심판결이 선고되어 결국 임기만료 후에나 그것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 재판 당사자들은 재판지연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큰 혜택을 보고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것으로 인하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될뿐만 아니라 정의와 형평이 존재하냐면서 법제도를 원망하게 된다.
헌법 제27조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한다. 다만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5월이내에 선고한다’고 규정한다. 또,‘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法諺)이 있다. 재판의 최종결과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나오면 피해자의 손해가 회복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재판이 사실상 아무런 실효성이 없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한 점에서 재판의 정확성 못지않게 신속성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2022년 사법연감’에 의하면 민사 본안사건의 합의재판부의 경우 1심 처리 기간은 평균 321일, 항소심 처리기간은 759일, 상고심 처리기간은 977일이 소요되고 재판기간은 거의 3년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위 재판기간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더군다나 법원장추천제 도입, 고등부장 승진제도 폐지 등으로 신속한 재판의 동인이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심지어 법관들 사이에 일주일에 선고하는 건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마침 지난 11일 취임한 신임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로 ‘신속한 재판’을 꼽았다. 다행스럽고 반가운 소식이다.‘정확한 판결 ’못지않게 ‘신속한 재판’을 꼭 실현해 주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생각건대,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여 사법신뢰를 증대시켜야 할 중대한 책무가 있으므로 신속한 재판을 위한 사법정책을 개발하여 시행해야 한다. 신속한 재판을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예산이 뒷받침되는 한도에서 법관의 수를 증대하되 법관이 재판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열심히 재판하여 좋은 결실을 맺는 법관에게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유능한 조정위원을 활용하여 조정성공률을 높이는 것도 신속한 재판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위철환 수원고등법원 조정위원회장,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