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정치시대, 이미지 정치 시대의 시발은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의 TV토론을 꼽는다.
캘리포니아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햇볕에 그을린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케네디의 모습과 당일 건강이 좋지 않아 힘없는 닉슨의 모습이 TV 화면에 비친 순간, 선거의 결과는 점치기 쉬웠다.
1980년, 레이건과 카터의 TV토론에서 카터가 "대통령이 되기에 너무 나이가 많지 않습니까?"라고 레이건의 고령을 비꼬자, 레이건은 "나는 당신이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응수하며 노련한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었다. 단점이 장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미지 메이킹 이란 말이 등장한 것은 1987년 대선이다.
당시 노태우는 자신의 군 출신, 군부 독재의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보통사람’을 내세웠다. 입을 약간 벌리고 웃거나, 어린아이를 안아주는 모습 등을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했다.
1992년 대선에서 ‘신한국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영삼은 그 추진력과 실행력을 강조하기 위해 산행이나 조깅으로 강한 이미지와 함께 부드러운 카리스마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대선 실패 후 김대중은 ‘뉴 DJ 플랜’을 가동, 자신의 강성(?) 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꽃을 가꾸는 모습 등의 온화한 모습으로 ‘준비된 대통령’을 강조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IMF를 맞은 정국상황에 맞춰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슬로건으로 경제, 복지 등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이미지 정치의 변곡점을 만든 것은 2002년 대선의 노무현이다.
당시 노무현은 ‘열린 정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다가서며, 기존의 선거전략과는 다른 획기적인 홍보전략을 구사했다.
인터넷의 활용과 각종 프로모션들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이후 대선, 총선, 지선 등 우리나라의 선거는 현란한(?) 각종 캠페인의 경연장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시대의 채널들은 단지 ‘선거를 위한 정치’의 수단으로 도구화되었다.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확대하기보다는 단절과 차단의 배타적 채널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적당한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것이 선거 그 자체가 되었다.
미래의 비전을 위한 경쟁은 없다. 단지 당선을 위한 꼼수(?)만이 존재한다.
정치철학이나 국가발전에 대한 능력의 검증은 사라졌다.
이제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닌 정치를 위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
단지, 승부의 문제로의 접근이 아닌 진정 이 나라, 이 국민의 도약과 행복을 위한 경연이자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미지란 개인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 개념, 인상의 총합이다.
이미지는 단순히 직관의 믿음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다.
특정한 대상에 관한 총체적인 믿음의 집합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 정치는 실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에 우려된다.
그림자가 실체를 가리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의 계절이 도래했다.
현실은 이미지의 그림자에 갇혀있기에 도드라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허상을 거둬내 실체를 찾아내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정상환 한국홍보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