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얼마 안 남은 시점, 우리나라 정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늘 그래왔듯 대한민국 정치판은 여전히 싸움 중이다. 텔레비전,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 등에는 정치인들끼리 서로를 헐뜯으며 싸우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이젠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갈라져 서로를 철천지원수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1972년에 방영된 코미디프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의 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 코미디언이 "여보쇼,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어떻다고 보십니까?"하고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 하나 없어! 매일 당파 싸움이나 하고!"라고 결론 맺는 장면이었다. 정치인들이 싸움하는 풍경은 더 악화된 듯하다.
2022년 말 한 방송에서 "정치하기 딱 좋은 나이, 열세 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 모의 정치에 참여하여 다양한 법률안을 작성해서 발표도 해보고, 일상 속 문제들을 두고 찬반 토론을 펼치며 의견을 조율하는 등 정치 경험을 하도록 한 적이 있다. 이 아이들은 어른들의 정치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의 답은 이러했다. "이미 편을 다 정해놓고 토론하잖아요.", "서로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실망시키는 정치, 언제까지 서로 헐뜯고 욕하고 막말하고 거짓말하는 저질 정치를 지속할 것인가.
가수 노사연 씨가 노래에서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우리 사회는 잘 익어가고 있는 것인가? 저질 정치로 인해 사회가 점점 더 병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신과 혐오로 가득한 이유가 정치권과 그에 편승하는 언론의 동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린 아이나 같으면 부모가 엄하게 혼을 내서 화해도 시키고 다시는 싸우지 못하게 다짐도 받고 할 텐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어른도 없는 듯하다.
앞의 열세 살 아이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정치,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나라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해법을 찾아가는 그러한 정치를 과연 희망할 수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디서부터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원론적이겠지만, 그 답은 인성 교육에 있지 아닐까 한다. 인성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존중이다. 그것은 타인도 나와 똑같이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타인 없이 나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달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할 존재가 타인이라는 것, 나의 생각과 판단이 편협하고 그릇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못한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치기로 다짐하는 것,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릇된 것을 그르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것 등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사람답게 살아야 할 기준이다.
가톨릭(천주교) 사제가 되기 위해 군복무 기간을 포함 10년가량의 양성을 받는다. 이는 사제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소양과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한 시간으로, 양성의 여러 분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성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신부라 할지라도 인성의 바탕이 되지 않은 사제는 존경받지 못한다. 동료 사제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사목지에는 늘 신자와 갈등과 마찰을 빚기 마련이다. 당연히 사제로 살면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얻기 힘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인성이란 것은 한 번 형성되면 바꾸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공동체(기숙사) 생활을 하며 인성적으로 많은 부분 보완할 수 있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사제 양성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이 얼마 남지 낳았다. 이제 와서 정치인의 인성교육을 다시 시킬 수 없다면, 그중 인성이 나은 사람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투표의 기준은, 정치적 색이 어떤 색이냐가 아니라,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품을 지녔는가, 저 사람은 정말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가진 것을 전부 내어놓을 만큼 헌신적인 사람인가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좀 더 노력을 기울여 후보들의 인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