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열풍이 대단하다. 왜 우리 시대가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열광하는 건가? 그는 당시로써는 비주류 철학자였고 기질적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심각한 불안증을 호소했으며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주먹을 휘두르던 심리적 불균형이 컸던 사람이었다. 여러 여성으로부터 그들을 좋아했다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았던 터에 여자에 대한 증오가 컸던 사람이었다. 우리 시대에 어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왜 소환된 것일까?
최근 그와 관련된 다양한 교양서가 서점에 등장하면서 그 판매량과 매체들이 보이는 관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가 극복했던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한 이야기가 우리 시대의 고민과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아포리즘을 담은 책은 몇 달째 베스트셀러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는 비관을 비관할 줄 아는 사람, 사랑한 사람들로부터 심한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었고 지적으로 뛰어났던 그의 재능이 발휘되면 될수록 오히려 혐오에 시달렸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객관적이면서도 냉철하게, 그리고 유머 있는 격언(아포리즘)을 특유의 철학으로 승화시켰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운명을 만들어 가는 선택을 할 수 있다"라는 그의 아포리즘이 현대인들 사이에서 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칸트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인생 궤적을 통해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아닌, 의지로서의 세계를 해석해 냈다. 그는 내가 주체가 되어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 또한 이해되거나 경험되어야 하는 객관적 존재라는 사실을 주장했다. 내가 대상을 단지 인식하므로 경험하는 것은 물론, 내 안에 있는 경험과 인식의 기관에도 의존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의지와 작용을 다른 세계로 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같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하나는 내부에서,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관찰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제 그는 의지의 표상으로서 세계를 관찰한다. 그것이 고슴도치 이야기에 담겨 있는 그의 행복론이다.
고슴도치는 자기 몸에 난 가시 때문에 다른 고슴도치에게 다가갈 수 없다. 다른 고슴도치가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 서로 찌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시가 없는 머리를 맞대어 온기를 나누어 가지므로 추위를 이기는 지혜를 발휘한다. 고슴도치의 생태 섭생법이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 녹아 있다. 그는 말하기를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그것에 타협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고슴도치 이야기는 실제로 그의 책 ‘부록과 추가(Parerga und Paralipomena)’에 들어 있으며, 그는 가능한 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을 개념화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주관적 행복론을 넘어 냉정하고 객관적인 행복론을 설파했다. 염세적이며 비관적인 자신의 기질을 극복해가며 그에 따라 형성된 인생관이 다른 사람을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처세를 그의 독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현대인들이 쇼펜하우어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관계가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한 사회 내 생존전략을 모색한 결과인 듯하다. 다시는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결의가 쇼펜하우어 열풍에 녹아 있다. 그는 불편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는 현명한 처세를 제시한다.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그리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타자를 무위화 하려는 낭비적 인생관을 극복한 사람이다. 내가 찔리지 않으면서 타인을 가시로 찌르지 않을 수 있다는 그의 공존의 처세술에 우리 시대가 열광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된 우리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불행감을 그가 전하는 철학적 아포리즘이 적절하게 위로해주고 있다. 자신의 불행을 극복한 그의 철학적 사유, 하나의 몰락에서 새로운 가치가 잉태되어 태어날 수 있다는 그의 긍정의 아포리즘이 독자들 사이에서 뜨겁게 공명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므로 획득되는 적당한 채움, 그것으로부터 누리고 경험하는 행복을 찾고자 하는 쇼펜하우어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 우리 시대를 지금 관통하고 있다. 아무쪼록, 사회 곳곳의 이웃들이 우울한 현실감을 극복하고 행복을 향한 춤을 추게 되기를 희망하며 응원한다.
차종관 세움교회 담임목사, 전 성결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