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이천시 신성골사과 농원에서 채정신 대표가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29일 오후 이천시 신성골사과 농원에서 채정신 대표가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많은 현대인들이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쳐 귀농이나 귀촌을 상상해 보곤 한다.

상상으로는 편안하고 여유가 넘치는 생활이 가능할 것 같지만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실행했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귀농, 귀촌이다.

실제로 포털에서 귀농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면 무수히 많은 실패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올해로 귀농 14년차를 맞은 채정신(67) 이천 신성골사과농원 대표는 중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철저하게 준비할 것"을 당부했다.

사과나무 꽃이 만개한 지난 23일 신성골사과농원을 방문해 채 대표의 귀농과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원 떠나 이천에 자리잡다=채 대표는 결혼 후 수원에서 공인중개사로 15년가까이 일하다가 귀농을 결심했다.

일을 하면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공기 좋은 농촌에 가서 살 생각을 하게 됐다.

채 대표는 "살던 집과 농촌진흥청이 가까워 텃밭일도 배워보고 하다보니 건강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껴 귀농을 결심하고 수원을 떠났다"고 말했다.

귀농할 지역을 선택하는 것에는 공인중개사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

강원도로 떠날 생각도 했었지만, 교통도 편리하고 상수도보호지역 내에 속해 당시 땅 값이 저렴했던 이천을 최종 선택하고 땅을 구입했다.

별 다른 준비없이 시작한 농사는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채 산지에 위치한 땅에 나무를 심고 나서 나중에 가보니 나무가 풀에 뒤덮여 사라진 적도 있다는 채 대표는 그 이후 본격적으로 농사를 배우기로 했다.

그길로 한국농업대학교의 마이스터 과정에 입학해 사과 재배를 전공, 4년의 교육과정을 모두 마쳤다.

입학 3년차에 이천으로 이주, 구입해 둔 땅에 나무를 심고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신성골사과농원의 시작이다.

채 대표는 "학교에서 잘 배운 덕분에 농사가 그리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며 "당시 동기들도 와서 일손을 돕고, 가족들도 자주 거들어줘 수월했다"고 회상했다.

29일 오후 이천시 신성골사과 농원에서 채정신 대표가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29일 오후 이천시 신성골사과 농원에서 채정신 대표가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1년 기다림 아깝지 않은 맛 좋은 사과=채 대표는 농번기가 시작되면 사과 재배를 위한 가지 유인부터 수확 후 판매까지 거의 대부분 혼자서 일하고 있다.

약 550주의 사과나무를 돌보는데, 심지어 성인 남성들에게도 쉽지 않은 무거운 예초기를 메고 풀을 베는 일까지 직접 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채 대표는 "하루에 순수 일하는 시간은 평균 네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정말 바쁜 시기에는 가족들이 주말에 한 번씩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골사과농원은 도매로 사과를 판매하지 않고 대부분의 물량을 농원에서 직접 판매하고, 일부만 농협의 로컬 매장에 납품한다.

사과 수확이 시작되면 수확기까지 1년을 기다린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 포장할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10월 중순 즈음 수확기에는 체험농원도 진행하는데, 서울과 용인 등 인접지역에서 찾아오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하루 평균 30명 정도된다.

때문에 수확과 판매가 겹치는 가을에는 일손이 바빠지는데, 혼자서도 충분히 일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수확시기를 가진 품종들을 여러가지로 나눠 심었다.

가장 먼저 열리는 사과부터 차례로 수확할 수 있도록 품종을 배치한 것이 채 대표의 노하우다.

또한 빨갛게 물든 사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햇빛을 많이 받도록 잎따기를 반드시 해주어야 하는데, 채 대표는 잎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빨간 사과가 보기에는 예쁘지만, 그 과정에서 과일에서 가장 중요한 당도가 1~2브릭스(Brix) 낮아진다는 것이 채 대표의 설명이다.

채 대표는 "퇴비도 너무 많이 쓰면 사과의 단단함과 당도가 떨어질 수 있어 수세가 약해진 나무에만 조금씩 쓰고 있다"며 "과일은 일단 달고 맛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신성골사과농원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농산물우수관리제도(GAP)인증을 비롯해 경기도의 G마크 인증도 받아 안전한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내 식구들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사과를 키운다"며 "매일 농원을 둘러보며 나무를 살피고, 병든 열매를 바로 바로 따내니 병도 많이 번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9일 오후 이천시 신성골사과 농원에서 채정신 대표가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29일 오후 이천시 신성골사과 농원에서 채정신 대표가 솎아내기 작업을 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철저히 대비해야 행복한 귀농 가능"=채 대표는 귀농 후 가장 좋은 점으로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채 대표는 "도시에서 일할 때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데, 농사를 시작한 후에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며 "나무마다 특성이 다르고,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살피다보면 지루할 틈이 없어 좋다"고 미소지었다.

농촌 생활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예비 귀농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땅 구입부터 시설비와 장비 구입비 등 초기 투자비용이 필요한데다 과수농사의 경우 처음 나무를 심고 열매를 본격적으로 수확할 때 까지 3년 정도의 기간을 오롯이 버텨야하기 때문이다.

채 대표는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다면 과수 재배는 힘들 것"이라며 "기존에 나무들이 잘 자리잡고 있는 과수원을 인수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신체적 능력과 경제적 규모를 잘 따져보고 농사 규모를 결정해야만 지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농사를 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농업인으로서의 목표를 묻자 채 대표는 "딸이 반 농담처럼 나이 80까지는 농사를 지으라고 하는데, 지금처럼 행복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 나이에 크게 바라는 것도 없지만 더 좋은 사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각오를 전했다.

임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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