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좀 더 깊이 관찰하므로 새로운 실재와 마주하므로 이 세계에 대한 진리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되었지만, 세상을 바꾼 진리를 기술하고 그것을 실제 삶의 문제와 항상 결합하지는 않았다. 2세기의 천문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체의 현상을 오랫동안 관찰한 후 수학적 모델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는 천문학자의 사명을 수학적 모델만 제공하는 데 제한한 채, 행성들의 실재와 그것들의 운동에 관한 구체적인 과학적 이론을 주장하거나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과학 이론은 단지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이 세계에 대한 진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세상의 실재를 관찰한 많은 사람조차 세계 이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고 새로운 이론을 내놓기는 했지만, 세상을 바꾼 과학혁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지연된 것은 오랫동안 그들의 신념 체계를 형성해온 세계관 때문이었다. 만일 단순한 발견이라고 보였던 타원을 따라 행성들이 운행한다는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세계 이해를 위해 정당하게 사용되었더라면, 실제로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 6세기쯤 출현할 수 있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발견된 진리에 대한 표명은 소위 교도권(Magisterium)이라 불리는 권위를 거스르는 것이었고, 이미 종교적 교의(Doctrine)에 의하여 결정된 것을 사적인 신념으로 전복시킬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만일, 당시 새로운 실재에 대한 발견이 쉽게 공론화될 수 있었더라면 과학혁명은 1천 년 이상 더 일찍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만일 그 일이 실제로 실현되었더라면 통일 신라 시대에 로켓을 쏘아 올려 달나라에 다녀왔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두 번의 초대형 인류재앙으로 기억되는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 과학자였던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1891~1976)는 수천 년 동안 유럽이 기초로 삼았던 도덕적 토대가 무너진 후에 비로소 새로운 세계 인식에 눈을 떴다. 그의 인식의 전환은 마치 성서의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인식체계를 완전하게 뒤바꿨던 패러다임 전환적 사건과 유사했다. 그것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볼 수 있게 했던 특수하며 인간적이며 그리고 도덕적인 토대로부터 분리된 객관주의적 관점에 기초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있음을 경험한 것이었다. 니체는 이런 인식론적 전환을 가리켜 ‘우주 속에서의 삶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폴라니는 자신의 인식론적 전환 직후, "근대인에 대한 과학의 주된 파괴적 영향력은 기술의 발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과학이 우리의 세계관에 미친 영향에서 기인했다."라고 술회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마주했던 가장 해로운 문제는 세계에 대한 근대 과학의 이미지, 즉 서양의 사고방식을 규정한 특정한 종류의 과학적 전망 때문이었다. 그는 전환적 세계의 경계선에서 비로소 새로운 세계 이해는 물론,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어떤 특정한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20세기를 규정한 냉전의 시대였다. 현재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즉 왜곡된 전망을 깨뜨리는 새로운 실재와 마주하게 하는 이해를 가리켜 그는 "인격적 지식"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기존의 실재를 한층 더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비례함수(계수)의 역할을 한다. 세상은 이 계수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전혀 새로운 결과를 도출한다.

불완전해 보이는 실재와의 처음 만남은 상호작용이라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새로운 구성 요소를 만들 수 있다. 반드시 그렇지 않을지 모르나, 역사는 그것을 자주 증명해 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요구가 봇물 터지듯 분출되고 있다. 이 상황은 우연인 듯 보이지만 어쩌면 그동안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서 일정 기간 응축된 것이 분출된 필연적 사태일지 모른다.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만남은 단순한 충돌을 넘어 새로운 융합을 일궈낼 수 있다. 복잡다단한 현 상황이 새롭게 적용(適用)되는 시대에는 새롭게 적응(適應)되는 정합적 세계가 발생 될 가능성이 분명 잠재되어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새로운 사회 질서와 그것이 수반하는 실재에 대하여 진지하고 겸손하며, 그리고 대담하게 현실을 이해하는 인식적 격위(格位)를 유지한다면 말이다.

차종관 세움교회 담임목사, 전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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