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에서 ‘노노간병시대’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 하는 시대가 왔다는 말이다. 자식이나 며느리가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게 큰 미덕으로 여겼는데 어느새 갑자기 옛날이야기가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결혼시키면서 새집을 마련하여 따로 내보내니 자식은 자연스레 부모 곁을 떠나고 며느리는 집안의 가풍을 이어받을 기회조차 없게 돼버렸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나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면 하는 수 없이 요양원을 찾게 마련이다. 가족 중 누가 돌보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는 수 없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들딸 며느리들이 결정해 하루아침에 요양원 침대로 옮겨지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살아온 노인세대는 변화에 둔감하고 고정된 생각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땐 남자는 부엌에도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였으니 생각을 바꾸기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커피 한잔도 사 마시기 힘들게 되었다.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힘닿는 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식사도 챙기고 설거지도 하고 아내가 시키면 마트에 다녀오는 잔심부름도 즐겁게 해야 한다.
여성 우월시대에 남자도 기본으로 가사 일을 배우고 몸에 익혀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어르신을 만났다. 손에 무언가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뒤로 감추려 한다. 알고 보니 음식쓰레기 버리러 가는 중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출근하면서 떳떳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아들딸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멋도 부리고 가끔은 자식들 불러모아 맛난 것을 사주며 토닥거리며 웃음꽃도 피워본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한다. 본인 건강은 본인이 챙겨야지 누가 챙겨 주지 않는다.
가끔은 바깥으로 나가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보기도 하자. 이제는 아내와 못 가본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야지. 석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잔 앞에 놓고 거친 손을 잡으며 지난날을 회상해 볼 일이다.
권영호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