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잠재력이 확장되었고, 이는 인식 체계와 상호작용 방식의 변화를 크게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M. 매클루언은 저서 ‘인간의 확장’에 "미디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능력을 확장하는 매개체"로 규정하고, "책은 인간의 눈과 뇌의 확장이며, 전화기는 목소리의 확장이다"라고 주장했다. 책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여 깊은 지식을 받아들이게 하며, 휴대전화기는 유선 설비가 불가한 광활한 지역의 공간 제약마저 없앴다. 모든 미디어가 인간의 특정 능력을 확장하여, 물리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악기는 인성(人聲)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기능을 확대하여, 목소리로 낼 수 없는 고저음, 빠른 리듬과 큰 음량을 수월하게 표현한다. 음악의 물리적인 악기 편성이 조화로움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구성 악기가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는 점이 앙상블의 본질이다. 그 역할은 음향 생성의 기능을 넘어 배려가 든 내면의 가치를 포함한다. 단일 대오로 묶은 유니즌 가락은 개별화된 음색을 배척한다. 다양성이 결핍된 이것으로는 앙상블의 상호작용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마치 전체주의나 종교 극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개성과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회와 종교의 범주 안에서 ‘책무, 임무, 선물, 제물, 봉사’를 뜻하는 라틴어 ‘무누스(munus)’는 공직자가 공동체를 위해 수행하는 의무나,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 사용되었고, 공동의(communis), 면역의(immunis), 관대한(munificus)과 같은 단어를 파생했다. 인류의 정착 생활로 농사가 발달하면서, ‘가꾸고 경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농업(Agriculture)의 어휘가 나왔다. 문명은 교양 있는(cultured) 구성원들을 더욱 필요로 했고, 공동체(community) 공공질서의 개념은 문화(culture)라는 이름을 고정했다. 문화란 의무감, 책임감, 관대함을 내포한 ‘무누스’ 안에서 그 어의(語意)의 중심을 꿴다.
앙상블은 우리 삶의 모든 관계에서 작용하며, 그 상징성은 음악을 넘어 사회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홀로 튀는 개별 악기는 앙상블에서 오류다. 연주자는 이끌고 받쳐주고 채워주고, 물러서고 들어서는 시간을 감각으로 조정하며 앙상블을 이루어낸다. 조화로운 울림이 가슴에 닿을 때, 청중은 반응하고 감동한다. 앙상블에서 개별 악기는 배려와 절제로써 다른 악기와 함께 목표에 다다른다. 자타 사이의 가변적 타협이 앙상블의 본질이어서, 세미한 악센트, 호흡 타임, 텅잉에 이르는 아티큘레이션의 교합이 섬세하지 않으면 앙상블은 무너진다.
디지털 기기와 소셜 미디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 환경에 잘 적응한 MZ세대는 소비 성향, 가치관, 삶의 방식에서 기성세대와 사뭇 다르다. 게임기는 그들의 팀 체육 활동을 대체했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은 그들이 조종간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했다. 대학에서는 상대평가의 그늘이 학생들의 결속과 협력을 저해한다. 자신의 평가 학점이 동료의 성취와 연동되기에 서로를 낯선 경쟁자로 인식한다. 출중한 미디어 사용 능력과 과한 의존은 토론과 숙의하는 과정 자체를 점점 무의미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협업을 수용하지 않으면 앙상블을 잘 작동할 수 없으며, ‘무누스’에 담긴 봉사 정신을 구현하기도 어렵다.
우리 몸은 오백만 년 전의 유전 속성에 아직 머물러 있다. 합력으로 매머드를 사냥하던 행동 방식과, 협력하여 지혜를 구해야 하는 한계도 여전히 지니고 있다. 기술 활용 능력이 지나치게 확장된 오늘, 우리는 AI 슈퍼휴먼에 인류의 미래를 의탁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인간은 점점 ‘과정’을 기계에 빼앗기고, 그가 계산해서 던져주는 ‘결과’만 받아쓰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알고리즘은 상업주의로 우리의 수요 판단을 희롱하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과 의존이 ‘인간적인’ 소통을 방해하고, 인간의 사이를 점점 멀게 한다는 점이 역설이다.
미디어의 속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대체재가 주체를 점유하는 시대에, 우리는 편리함의 대가로 관계의 해체를 감수하고 있다. 인간의 확장 시대에도, ‘인간다움’이란 여전히 인류의 고유한 가치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이 없으면, 공동체 안에서 무누스를 유지할 수 없다. 온라인 책무성, 협력 기반 교육시스템, 팀워크 공동목표, 공익 가치 실현과 같은 과제를 사회시스템의 중심에 두는 것은 국가와 정치지도자가 가져야 할 관리자의 본령이다. 사회구조의 불합리는 국민소득 수준과 선진문화 수준이 비례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공동체를 향해 ‘무누스’ 앙상블을 연주하며, 기능이 감성을 제압하는 불행한 현실을 거칠게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주용수 한경국립대학교 창의예술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