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복싱은 국민스포츠였다. 요즘으로 치면 프로야구나 이종격투기를 넘어서는 인기를 누렸다.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도 많았다. 그 중 특히 주목받았던 선수가 있었다. ‘작은 들소’로 불린 유명우다. 그는 당시 39전 38승(14KO) 1패라는 믿기지 않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한국 복싱사의 전설로 남았다.
작은 체구에 연약해 보이는 그가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실마리는 그의 과거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았다." 히딩크의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의 전무후무한 기록은 끝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독려해서 얻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현재 유명우는 경기도 부천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며 여전히 복싱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복싱 열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최근파리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가 탄생하며 다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후배들이 뛰는 한, 저도 뛰며 오랫동안 함께 호흡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후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선수 시절 날카로움이 남아있는 유명우를 그가 운영 중인 체육관에서 만났다.
- 은퇴 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은퇴 후 다양한 일을 해봤지만 복싱만큼 가슴을 뛰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복싱계로 돌아와 후배들 양성에 집중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특히 여자 복싱 유망주인 신보미레 선수가 내년 세계 타이틀 도전을 앞두고 있어 시합을 준비하고 있다. 신보미레는 세계 무대에서도 유력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어 지도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내달 7일 전초전이 예정돼 있다."
-선수 시절 세운 전설적인 기록이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전설’로 불러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기록은 숫자일 뿐 언젠가는 깨지게 돼 있다. 오히려 하루빨리 좋은 후배들이 나와서 내 기록을 넘어서길 바란다. 그때가 한국 복싱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 어린 시절 복싱 외에 다른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어릴 적에는 야구와 축구도 좋아했다. 다만 체구가 작다 보니 그런 운동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TV로 홍수환 선수가 네 번의 다운을 딛고 역전 KO승을 거두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복싱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 선수시절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프로 데뷔 첫 시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상대 선수가 수염을 기르고 체격이 커서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막상 링 위에 올라가니 경기에 집중하게 됐고, 오히려 공포가 사라졌다. 데뷔전에서의 경험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
- 수많은 경기를 치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이 있다면.
"아무래도 1985년에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순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게 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일본 원정에서 잃었던 타이틀을 다시 되찾은 순간도 잊지 못한다. 일본에서 패배한 후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고, 비난도 있었다. 각오를 다지고 1년 후 다시 일본으로 가서 그 선수와 재경기를 치렀다. 어려운 시합이었지만 결국 승리해서 벨트를 되찾았다. 세계 챔피언 등극 못지않은 큰 기쁨이었다."
- 복싱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링 위에서 주먹을 피하려면 연습할 때 땀을 충분히 흘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을 많이 한 선수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복싱에선 타고난 재능보다 꾸준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가장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선수가 끝까지 살아남는다."
- 요즘 젊은세대는 꿈이 없다고들 한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요즘 젊은 세대는 가능성이 낮아 보이면 시도조차 안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도전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고, 실패하더라도 얻는 것이 크다. 내 인생 역시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런 과정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유명우에게 복싱은 무엇인가.
"복싱은 제게 인내와 도전의 의미를 가르쳐준 스승 같은 존재다. 순간순간 견딜 수 없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끝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인생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끈기와 열정 있는 사람만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승리할 수 있다."
최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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