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동안 국악의 길을 고수해온 소리꾼 전영랑. 어린 시절 가족의 권유로 시작한 소리는 이제 그의 인생과 하나가 됐다. 경기민요를 중심으로 꾸준히 대중과 호흡해온 그는 국악이라는 쉽지않은 분야를 자신만의 소리로 풀어냈다. 최근에는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로 전통 음악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전영랑은 앞으로도 무대를 통해 우리 음악의 가치를 전하며, 대중에게 긴 세월 감동을 선사하는 소리꾼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
"어릴 때 부터 노래를 좋이했다. 특히 저희 어머니께서 트로트를 잘 부르셔서 주현미 선생님의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곤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큰 이모가 인천에 국악 학원을 개원했고, 저를 소리꾼의 길로 이끌어주셨다. 당시에는 이 길을 가야 하는 줄 알았고, 고민할 겨를 없이 자연스럽게 노래에 빠져들게 됐다."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
"그때는 어렵다거나 싫다거나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집을 떠나 학원에서 먹고 자며 학교를 마치면 바로 연습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생활했다. 소리꾼이 되기 위해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훈련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연습 과정은 정말 힘들지만, 소리가 재밌다고 생각하면 그 힘든 생각이 사라진다.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을 정해 연습하는 것보다 집이든 차 안이든 틈만 나면 노래를 하고 목을 풀었다. 소리는 꾸준히 하지 않으면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일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에 연습을 녹여내기까지 주변의 시선과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야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항상 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호흡장애와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숨이 차고 목이 잠겨도 연습을 계속했다. 그럴 때마다 ‘큰 시련은 큰 선물로 돌아온다’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뎠다."
-29년 동안 많은 공연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경험이 있나.
"지역 행사에서 경기민요를 부르면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아버지와 함께 방송에 출연한 후 행사에 갔는데, 관객분들이 저 보다 아버지를 알아보셔서 재밌었다. 어디를 가나 "아버님은 안 오셨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다."
-다양한 곡을 발표하셨는데, 그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
"모든 곡이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약손’은 가장 특별한 곡이다. 이 곡은 제가 아이를 낳고 선물처럼 받은 곡이다. 당시 제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했었는데, 곡을 연습하며 아이를 품에 안고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한 ‘떠난님’이라는 곡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게 녹음했던 곡이다. 부르면서 많이 울었고, 감정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노래다."
-요즘 드라마 정년이가 인기인데, 보신 적이 있나.
"관심있게 조금씩 챙겨봤다. 드라마에서 전통 음악과 소리가 다뤄지는 걸 보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예술은 본인과의 싸움이다. 소리꾼의 최고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과 자기 극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크게 공감했다. 또한 전통 음악이 드라마와 협업을 통해 더 많이 노출된다면, 전통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현대적인 매체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점이 매우 기쁘다."
-최근 들어 경기민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전통 음악이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면, 다양한 방식으로 노출돼야한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등 여러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있으며, 발표회도 꾸준히 열고 있다. 국악과 EDM을 결합한 작업처럼 새로운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리꾼으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 목표다.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싶고, 소리를 잘 관리해 오랫동안 좋은 무대를 선사하는 것이 꿈이다.
최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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