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죽마고우가 낯선 야생초 사진에 글을 달아 보냈다. "개두릅, 개옻나무, 개망초, 개똥쑥, 개살구. 머리에 ‘개’ 자가 들어간 식용식물은 이름은 천해 보이나 한결같이 효능이 탁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흔한 식물이니 관심을 두지 말라 해놓고, 혼자 여유롭게 차지하려던 옛사람의 지혜였을지도 몰라. 오월의 싱그러운 산야에서 쑥이랑 씀바귀랑 개옻순이랑 따올까."
오래전 우리 마을에 개똥이가 있었다. 아이의 무탈함을 기원한 작명이었다. 개똥이, 돌쇠, 말뚝이 같은 천한 이름으로 가림으로써, 나쁜 기운이 아이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일종의 주술적 믿음 백신이었다. 당시 보건 위생 환경이 온전하지 않아 자식을 많이 낳고 많이 잃었다. 영아 스스로가 생존을 증명할 때까지 출생신고를 유예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라는 ‘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적 상대성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들의 사고방식과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E.사피어와 B.워프는 언어가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인간의 인지 구조를 형성하고,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는지를 규정한다고 했다. 외국어를 사용하거나 배우는 과정을 이 가설에 대입해 보면, 언어의 힘과 문화적 차이가 어떻게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용어(terminology)는 소통의 기능을 넘어 의식을 지배한다. 외래어 ‘카바레’, ‘호스티스’는 문화가 낙후한 땅에 발아하여 고약한 의미로 굳어 버렸다. 불온한 어휘는 부정적인 의미를 상상하게 만들고, 아무리 개선하려 해도 본래의 일컬음으로 정화되지 않는다. 우리말 ‘동무’는 민족 갈등을 겪은 후, 더는 쉬이 사용하기에 난감한 명사가 되어버렸다. 이념에 붙들린 이 어휘는 언어의 순수성을 잃었고, 우리의 사고를 진부한 자기검열의 틀 안에 가두었다.
비속어는 감탄이나 강조의 감정 표현을 강하게 전달하는 도구로 발전해 왔다. 한국어 육두문자의 접두사로서는 단연 ‘개’를 꼽을 수 있다. 욕설 ‘개’가 최근 젊은 세대에서 ‘매우’, ‘정말’과 같은 감정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좋아’라고만 하기보다, "개 좋아"라고 하면 그 감정이 배가된다. "개 훌륭해." 뭔가 어감이 적절하지 않게 들린다. 부정과 긍정의 표현 결합이 주는 불편함이다. 언어의 생멸이 시빗거리는 아니지만, 어설픈 어휘 ‘개’는 점차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맥락으로 진입하고 있다.
신세대는 전통적 언어 규범이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기존 언어 표현 규칙을 깨고, 비속어를 재해석해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자유로움과 반항의 상징이다. ‘개’를 감탄사로 사용하는 것도 이런 문화 추세의 일환이다. 이는 짧고 강렬한 감정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며, 강도를 부가하는 ‘어감 강화 장치’로 자리 잡은 것이다. ‘개’는 그저 강조의 극대화를 돕는 수사에 불과하다. 단어의 원뜻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문화 코드 안에서 재설정된 가치로만 기능한다.
드라마에서 아버지가 딸을 부르던 애칭 ‘개딸’이 정치인 팬덤 형성 과정에서 다른 의미의 동음어로 사용되었다.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2030여성세대 ‘개혁의 딸’은 진보 진영 대선후보의 공약과 정책을 지지했다. 상반된 어감을 가진 ‘개’와 ‘개혁’의 중의적 의미에 긍정과 부정이 혼재하지만, 줄임말에 든 언어적 이중성은 그들의 의지를 강하게 역설(力說)한다. 지향성 있는 정치적 주장의 무게를 경쾌한 용어로 탈화한 것이다.
비상계엄 내란의 광기에 맞선 MZ세대의 참여와 의식 변화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았다. 어른들의 어리석음으로 잉태한 재앙을 고스란히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전국의 시위 현장을 압도적으로 주도했다. 이 참담한 사건을 통해 젊은이들은 투표 참여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선거의 결과가 얼마나 삶의 존립을 훼손할 수 있는지 뼈아프게 통감했을 것이다. 광주의 아픔 위에 쓴 작품이 노벨상을 받는 찰나에 벌어진 친위쿠데타의 역설(逆說)이라니.
기득권의 재분배는 격한 투쟁과 저항을 수반하며, 남녀 간, 세대 간 대립은 변화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개딸’ 현상은 젊은 여성 세대가 새로운 정치적 동력의 중심부에 떠올랐음을 상징한다. 이들의 참여는 단순한 팬덤의 열정을 넘어, 사회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집단 의지의 발현이다. 집단 이기주의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그 결사체의 역동성은 사회에 긍정의 힘을 줄 것이다.
젊은 세대의 외침은 마치 산야의 야생초와도 같다. 비바람을 이기고 생존하는 들풀처럼, 그 주장은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여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들은 시위를 축제로 바꾸어 비폭력의 당위성을 견지하며, 상대에게 반격의 빌미조차 주지 않았다. 영하의 겨울밤에 케이팝 응원봉을 흔들며, 내면의 불안을 딛고 유쾌함으로 투지를 표출했다. K-컬처를 주도하는 2030 MZ세대의 창의성과 지적 성숙함에 힘입어, 우리 사회는 더 진보한 문화의 탁월한 효능을 갖게 될 것이다.
주용수 한경국립대학교 창의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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