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모든 매체의 주제는 오로지 헌재의 ‘법치주의 원칙’과 ‘차분히’라는 두 단어로 대신할 수 있다. 기어이 오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내리게 되고 묘하게 하루 전 이런저런 얘기들을 담아야 하는 입장은 법치주의에는 동의하나 차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헌재 선고 결과에 이미 불복을 마음먹은 사람들의 술렁거림과 이를 부채질이나 기다리고 있는 듯한 정치권의 표정을 거리 어느 곳, 골목 후미진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다. 그 이유 역시 수 개월간 국민 모두를 기진하게 만든 인용이나 기각에 대한 두 진영의 입장차이다. 사법이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는 입을 모으나 저마다의 셈법은 기민하고 여전히 이기적이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오늘 헌재의 결정으로 당분간 나라는 두 조각이 날 것이 뻔해 보인다.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중대한 파장은 불가피해졌고 남은 것은 누가 이 상황을 추스를 것인가에 대한 주제다.
이번 탄핵 심판의 핵심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심판이라는 원칙이 얼마나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가히 헌법재판소는 단순히 법리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결국 이러한 원칙 아래 재판관들이 의견을 모을 가능성이 크다. 알다시피 오늘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경우 윤 대통령은 즉시 파면된다. 반면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내려지면 대통령직을 그대로 유지한다. 수 주일 전부터 언론은 법조계에서 재판관 전원이 8대0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몇 시간을 앞둔 지금으로서는 그 엄청난 결과의 후폭풍만 추측할 뿐 결론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헌법재판관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뿐이다. 헌법재판관들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관들은 각자의 법 해석과 신념에 따라 인용, 기각, 각하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헌재법은 소수 의견도 결정문에 기재될 수 있다. 따라서 만장일치가 아닐 경우, 재판관별로 어떤 법적 판단을 내렸는지와 그 논거가 무엇인지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당시 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 탄핵 심판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는 기각 결정이 내려졌고 이번에는 38일이라는 긴 심리 기간을 거쳤는데 이는 재판관들이 의견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절차를 들여다보면 헌재는 오늘 선고 전날이나 당일 오전 최종 평결을 통해 결론을 확정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개의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비단 개인을 떠나 정치인들의 결정에서만이 아니다. 국민 모두는 아직 휘발유 값이 녹록해서 못 느끼겠지만 이미 엊그제부터 시작된 미국발 관세로 조만간 조여 올 여러 형태의 압박 물가는 여기저기에서 대기 중이다. 뻔한 정부 통계나 동네 선술집 안줏감용의 겁박이나 단순한 예고편이 아니다. 매일 지금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탄핵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대한민국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인용될 경우 조기 대선이 불가피하며 정치적 혼란은 가중될 것이다. 반면 기각될 경우, 정치적 안정이 일시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나 탄핵 소추를 주도한 야권과 이를 지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길 것은 서로 치고받는 정도가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덜하고 입씨름 정도라는 정도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얘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폭풍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 시간을 가만둘 리 없다.
이들 역시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자기세력 이용으로 인한 혼란을 뒤에서 조장할 것이 뻔해 보인다. 그 혼란을 경찰 방어선이나 해당 구간의 전철 역사를 그냥 통과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도 어렵다. 솔직히 아직 이 시간에도 헌재의 결정이 국론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작용할지 오히려 더 깊은 분열을 초래할 미래로 안내할지 알 길이 없다. 그래도 반복되는 얘기는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고, 국민이 헌법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명제다. 짐작하다시피 탄핵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조차도 헌법과 법률 아래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오늘 우리는 또 한 번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헌재의 결정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그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게 된다.
오랜 시간 국민들은 진실이 구두끈을 매고 있을 때 거짓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다. 자기 신념에 맞게 혹은 눈을 질끈 감고 희망과 섞어서. 그래서 서로 변화되기를 고대하며 내 편으로 무릎 꿇고 들어오기만을 학수고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가 살아온 사회적 DNA를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타고난 그릇만큼 세상을 담게 마련이다. 서로 이 사실을 모를 뿐이다. 거기 담기면 다행이고 못 담기면 원하는 것이 거기까지란 사실이다.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는 정치적 안정과 국민적 화합이다. 모든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논쟁과 갈등 속에서도 발전해 왔다. 이번 탄핵 심판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마저 포함해서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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