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높은 지적 수준은 경제 부강만으로는 다다르기 어렵다. 선진 문화는 자율적 의무감 수반의 전제에서 출발하며, 교육은 포괄적 책임감을 성찰하는 연마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기본적인 기능은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그 깨달음이 인간의 존엄성을 창조하고, 통속적인 부르주아 의식을 몰아내기 때문에, 그 일에 온 정신과 마음을 바치게 해주는 것이다. 네가 일을 통해 표현하는 사랑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올바른 스승과 환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사랑이 없다면, 네 시험과 지식과 능력과 지위와 재산은 모두가 잿더미에 불과해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사랑이 없다면, 너의 행동은 더 많은 전쟁과 증오와 잘못과 파괴를 불러올 것이다." ‘삶의 진실을 찾아서’에서 J. 크리슈나무르티가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젊은이들에게 설파했다.
15년 전쯤, 서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전교 선두를 유지하는 아들의 성적에도 만족하지 못한 어머니가 아들을 심하게 학대했다. 골프채와 야구방망이 체벌을 견디지 못한 아들은 끝내 어머니를 살해했다. 당시 경기도에서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딸이 강원도의 명문 사립고에 진학하기를 강요하며 병적으로 집착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딸은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제 만족하느냐는 원망의 글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성적 향상이 이런 비극을 감수할 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것일까. 교육 목적성의 결함은 무모한 경쟁과 피폐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개인 삶과 공동체 존립을 위한 합리적인 교육시스템의 구조화가 당위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발전 과정을 압축한 우리나라는 급격히 선진국에 진입했다. 경제의 급성장은 문화의 자연스러운 진보를 방해하고, 선진형 시민의식의 결핍을 초래했다. 그 성장은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를 부양했지만, 그 이면에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을 동반했다. 개발도상국 시절, 학벌 획득은 가문을 세우는 일이었고, 자기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억압된 분위기, 가난한 나라, 군사 정권, 미성숙한 사회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기성세대의 과한 기득권 욕망은 결핍을 보완하는 반동으로 작용했다. 이타적 사고방식은 상업화된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었으며, 확보한 사회적 직위는 당연히 자신의 전리품처럼 여기게 되었다. 경쟁의 팽창은 얻어낼 결과물의 크기와 비례했다. 경쟁은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할 의례였고, 조직 내 상대평가제도는 협업해야 할 동료들을 잠정적 경쟁자로 배타하도록 기능했다.
인재 등용은 역대 정부의 국정 운영 성패를 좌우해 왔다.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첨예한 이념 갈등을 초래한 자들을 대거 활용한 윤 정부의 인사 행태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새 정부는 마치 재생품으로 조립한 자동차 같았다. 기득권을 자기 신분이라 여긴 자들이 주동한 내란은 국가의 존립을 위기로 몰고 갔다. 국민은 경악했고, 일상은 공포와 불안으로 위협을 받았다. 이른바 사회 엘리트들이 염치없는 민낯을 드러냈다. 환율을 방어해야 할 자가 외국채를 기웃거리고, 재판관 임명을 대행하는 자는 정치적 이해 전략을 구사했다. 평형감각을 잃은 법조인, 심지가 허약한 군인, 쌍욕을 퍼붓는 성직자, 공사 구분 못 하는 고위공직자. 이들은 모두 이익 앞에서 망설임 없이 사회 규범을 깼다.
사회 구성원은 도덕적, 사회적, 법률적, 문화적 규범을 따를 의무가 있다. 규범은 개인과 사회의 행동을 조율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법을 수호해야 할 법조인이 법조 체계를 흔들었고, 주권자의 명을 받은 공복은 공화국의 국본을 조롱했다. 국민은 국가 시스템의 극단적 엔트로피를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꾸짖음으로 국가 조직은 다시 관성을 얻어가고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혼돈을 딛고 일어설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교육철학의 부재는 사회적 괴물 사육을 방조하는 것과 같다.
평범한 일상과 합리적 규범은 어느새 간절한 소망이 되고 말았다. 온전한 민주제를 갖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는지 다시 깨달았다. 제도는 마치 무희의 춤사위가 허공에 형상을 그리는 것과 같다. 무형의 존재는 참여자의 신뢰와 구성원의 붙듦이 없으면, 허무하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했다. 불안정한 교육제도는 왜곡된 욕망이 꿈틀거릴 여지를 준다. 결함으로 얼룩진 공교육의 구조적 모순을 고쳐야 할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주용수 한경국립대학교 교수



AI기자 요약봇